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
그런 에너지가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산 가스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던 유럽의 산업은 엄청난 위협에 직면했다. 겨울에 직면한 유럽인의 삶은 장작과 난로가 상징하듯 중세로 돌아간 느낌이다. 가스와 전기 요금이 치솟은 탓이다. 전 세계의 에너지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와는 달리 유럽은 거리의 가로등뿐 아니라 마트도 개점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누구나 전기와 가스를 절약하고 싶겠지만 고객은 따뜻하고 밝은 것을 좋아한다.
겨울이 가까워지며 어둠도 한층 더 빨리 드리운다. 오후 5시에 벌써 해는 저물고 조명등이 켜진다. 그러니 전기가 많이 들고 비싸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추워지니 난방도 해야 한다. 그러나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빛과 열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서도 전문가들은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위기를 에너지의 전환이 속도를 낼 수 있는 기회로 본다. IEA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지구촌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계획이 실현된다면 청정에너지 투자는 2030년까지 연간 2조 달러로 50% 증가할 것이다.
한 가지 노력의 결실을 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석유 값은 너무나 저렴해서 기존의 히트 펌프는 값싼 석유 난방 시스템과는 비교 불가였다. 그러나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석유에 의한 난방비용이 300%나 치솟았다. 그래서 기존의 것을 더욱 개량하여 양산함으로써 CO2와 비용을 동시에 절약한 것이 지열 에너지를 사용하는 히트 펌프 기술이었다.
스위스의 초콜릿 회사 매스트라니(Maestrani)는 냉난방 기술에 착안하여 자체 냉각 기계의 폐열을 콘칭 온도를 공급하는 히트 펌프에 사용한다. 매스트라니의 개량 히트 펌프는 현재는 냉기와 열기를 모두 효율적으로 생산한다. 이는 전체 공장의 에너지 소비를 20% 감소시켜 연간 170톤의 CO2 배출량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1935년에 탄생한 냉동 기술은 히트 펌프와 원리가 같다. 전기냉장고는 내부를 식히고 외부로 열을 전도하는 반면, 히트 펌프는 외부에서 열을 추출하여 생활용 난방 에너지로 전도한다. 대형 히트 펌프를 설치하여 건물 난방에 적용한 사례가 스위스의 취리히 시청사이다. 1938년에 가동한 히트 펌프가 지금까지 가동 중이다. 취리히 구시가를 관통하는 리마트 강물을 열원으로 사용한다. 이에 비견되는 것이 2017년에 완공된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이다. 높이 555m의 이 타워도 히트 펌프로 냉각과 가열이 되는데, 200m 깊이에서 지열 에너지를 얻고 한강물을 냉난방에 사용한다.
세계 최대의 해수 히트 펌프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1986년부터 가동 중이다. 6개의 대형 히트 펌프가 발트 해의 열기를 이용하여 지역난방 네트워크에 공급한다. 스톡홀름의 건물 약 60%가 현재 이 지역난방 혜택을 입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는 폐수를 열원으로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시장과 에너지 정책은 향후 수십 년 동안 변화를 거듭할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의 정치적인 틀에서 보면, 석탄 사용은 향후 몇 년에 걸쳐 감소할 것이며, 천연 가스 수요도 10년 이내에 정체될 것이다. 더불어 전기 자동차의 판매 증가로 2030년대 중반이면 석유 수요도 꽤나 잦아들 것이다. 이는 작금의 에너지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려는 지구촌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과 동참이 수반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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