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관리와 예방이 부족했던 시스템을 지적하고 책임자 처벌로 호들갑이 예상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공간적 환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법이 규정하는 최소 도로 폭은 4m지만 참사가 난 도로는 불법으로 설치된 구조물에 의해 실제는 3.2m라고 언론이 보고하고 있다. 원래 건축을 위해서는 도로경계선 외에도 일정 정도 띄어 지어야 하는 건축한계선 규정이 존재한다. 건축법은 '대지 안의 공지'라는 이름으로 쾌적한 거주환경 조성을 위한 채광, 통풍, 피난, 소화 활동을 위한 공간 확보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형건축물이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건축물의 경우에는 통행이나 위급 시 피난 및 소화에 필요한 통로로서 대지 안의 공지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참사가 난 골목은 폭 6m 세계음식거리 인파를 지하철이 있는 너비 30m 이태원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넓혔어야 마땅한데도 수십 년을 그대로 방치돼온 것이다. 인접 호텔은 해당 법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건축됐다는 이유로 이격거리 규정도 적용받지 않고 오히려 별도의 구조물을 거리로 돌출시킨 채 행정조치에 따른 과태료만 물며 영업을 계속해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 도시계획도면을 열람해보면 호텔을 관통해 두 거리를 연결하는 8m 도로가 예정돼 있다. 즉, 문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행을 못 하는 실정이다. 아마도 호텔철거와 토지보상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물리적 상황이 이번 참사를 막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공공공간으로서 도로의 공공성과 사유재산으로서 이기적 욕심이 충돌하는 영역인 것이다.
2000년부터 시행된 지구단위계획은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토지이용을 합리화하고 기능을 증진하며 경관과 미관을 개선하고 양호한 환경을 확보해 해당 구역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개발·관리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지구단위계획 적용과 관련해 흔히 충돌하는 대목은 사유재산으로서의 토지이용을 공공이 제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내 땅인데도 불구하고 도로변 일정 구간에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이 공익을 위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지 소유주가 교묘하게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구간에 나무데크를 깔아 카페나 식당의 영업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별도의 구조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이다. 이러면 보행의 흐름을 가로막아 통행의 불편을 끼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게다가 간판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공공시설인 가로수를 훼손하는 행위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당연히 처벌이 따르는 범법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자체장은 혹여 선거에 영향이 있을까 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청주시 중앙동에는 번창했던 거리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가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소나무길'이 있다. 가로정비사업에 초기 상가 주인들은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로수 설치를 반대했다. 나무가 없이 정비된 거리는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가릴 수 없었고 건물과 간판만 즐비한 상가는 손님의 발길을 끌 수 없었다. 다시 소나무를 심어 분위기를 바꾸고 가게 앞 주차를 포기하여 차 없는 보행자 거리로 만듦에 따라 사람이 모이고 주변 거리로까지 활력을 전달하는 성공을 끌어냈다. 얼핏 각자의 이득을 제한하는 것이 손해일 것 같지만, 여럿을 먼저 배려함으로써 모두와 내 이익까지 배가되는 것이 도시공간이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근본이다.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보존할 때만이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하며 즐거운 생활이 보장된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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