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
지난 2월 필자는 '초거대 AI시대, 국가 슈퍼컴퓨팅 능력 이대로 안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초거대 AI 시대를 대비해 국가 슈퍼컴퓨팅 정책을 개편할 시점이라고 했다. 특히, AI 가속 칩 기반 국가 슈퍼컴퓨팅 인프라 확충과 대중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때마침 지난 8월 600페타플롭스(PF) 성능의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사업(2929억 원) 예타가 통과되고 2024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 6호기가 구축될 예정이다. 오랫동안 슈퍼컴퓨팅 분야에 몸담아 온 전문가로서 슈퍼컴퓨터가 대한민국 디지털 혁신을 선도할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향후 슈퍼컴퓨터 6호기 성공적인 구축에는 위험과 기회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위험은 철저히 관리하고 기회는 적극적으로 살려야 한다. 먼저 위험 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보통 5~6년 주기로 구축되는 슈퍼컴퓨터는 구축 당시 최신·최고 성능의 하드웨어(CPU·GPU, 메모리·인터커넥터 등)를 사용해 구축한다. 슈퍼컴퓨터 5호기 구축 데자뷔가 떠오른다. 5호기는 2015년 7월에 예타(908억 원)가 통과돼 2017년에 구축 예정이었으나 1년 이상 구축이 지연됐다. 당시 하드웨어 가격과 수급 상황 등에 의해 5호기 구축 입찰에 응하는 업체가 없었다. 몇 번의 유찰과 목표 성능을 약간 낮추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2017년에야 업체가 선정되고 2018년 9월에 구축이 완료됐다.
최근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와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이 심상치 않다. 지금처럼 고환율이면 600PF급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에 선뜻 나서는 업체가 있을지 걱정이다. 구축이 시작하는 2023년에는 환율과 하드웨어 수급 상황 등 구축 여건이 좋아지기를 기대하지만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 위험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한편 이번이 대한민국 슈퍼컴퓨터 30여년 역사를 재정립할 좋은 기회다. 5호기까지가 1000억 미만의 과학기술 연구 장비였다면 6호기는 3000억 규모의 디지털 대한민국 AI 경제를 견인할 국가전략자산으로 우뚝 서야 한다. 그동안 마땅한 자원이 없어 국내 연구진들이 감히 시도조차 못했던 GPT-3와 같은 초거대 AI 언어 모델 연구·개발에 6호기가 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얼마 전 서울대 백민경 교수님의 로제타폴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로제타폴드는 구글 딥마인드 알파폴드2와 함께 AI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 2021년 '사이언스'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선정됐다. 세미나 말미 감사의 표시에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가 나와 있어 MS사의 역할이 궁금해 질문했었다. 연구 초기에 MS사로부터 지원받은 5백만 달러(한화 70억 원) 크레딧으로 애저 클라우드 GPU 수 백 장을 활용했는데, 벌써 다 소진하고 지금은 크레딧을 조금씩 갱신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슈퍼컴퓨터 6호기가 구축되면 국내 연구자들이 로제타폴드 같은 혁신적인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호기가 디지털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견인하기 위해선 초거대·혁신적인 AI 연구에 6호기 자원의 30% 이상을 할당하는 과감한 정책을 펴야 한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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