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아 변호사 |
범죄 피해 사례가 넘쳐나고 정부와 경찰청, 금융기관, 언론에서도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수시로 홍보를 하고 있건만,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는 끊이질 않고 있다. 범죄 수법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직장, 거래하는 금융기관 등을 알아내어 경계심을 무너뜨린 후 압박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흔든다. 이런 고도의 지능화된 수법 때문에 연령대와 성별, 직업, 학력 고하, 사회경험 유무를 불문하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전직 은행원, 현직 판사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입은 전례를 보면 그 누구도 자신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보이스피싱의 또 다른 피해자는 현금수거책으로 '이용된' 사람들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중국 등지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는 '총책', 콜센터에서 피해자들에게 대출 알선과 범죄 수사 등의 명목으로 피해금을 전달하게 하는 '콜센터 조직원', 피해자들로부터 피해금원을 직접 수령해 송금하는 '현금수거책'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 중 수사기관에 검거돼 형사 처벌까지 받게 되는 대부분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단에 불과한 현금수거책이다.
'현금수거책' 중 상당수는 알바**, 잡***, 인크** 등의 구인·구직 사이트, 벼룩**, 교** 등의 구인광고를 통해 보이스피싱 범행인 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탈세 목적의 채권추심 업무라고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하게 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의 이름을 사칭해 구인 공고를 올린 후 구직자들이 지원하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채용절차를 거친다고 한다. 온라인으로만 각종 서류를 확인하고, 채용한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탈세 목적으로 거래업체로부터 현금으로 거래대금을 받는다거나 대출금을 상환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는다며 현금 수거를 지시한다.
현금수거책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사람이기에 검거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수사 및 재판 절차에서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부인 줄 알지 못했다"고, 즉 범행 가담의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하곤 한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비대면 채용 절차와 다소 높은 수준의 급여,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을 통한 업무 지시, 고액의 현금 수거 및 100만 원 단위의 무통장 입금 등의 이례적인 사정을 종합하면 범행을 인지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미필적 고의(어떤 행위로 범죄의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것)'가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고 유죄가 인정되면 대부분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유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해서 실형이라는 무거운 형사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들의 치밀하고 교묘한 전략에 따라 피해자들이 속는 것처럼 현금수거책 역시 이들에게 속아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뭣 모르고 현금수거책의 역할을 하게 된 이들은 대부분의 구직자가 사용하는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의 채용공고를 통해 이력서, 자기소개서 등을 내서 지원하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실존하는 회사인지 확인한 후 업무에 응한 사람들이다. 코로나19로 기업 운영이 힘들어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한 후 탈세 목적으로 거래대금을 현금으로 받아 오는 것이며, 흐름이 들통나면 탈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무통장 입금을 해야 한다는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믿었을 뿐이다. (탈세 역시 불법적인 것이지만, 탈세 범행과 보이스피싱 범행은 범행의 대상과 방법, 내용, 피해법익 등 구성요건이 다르므로 탈세 목적의 현금 수거라 생각했다 하더라도 보이스피싱 범행을 방조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물론 정말로 미필적 고의 내지는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가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의가 있었다는 점 역시 처벌을 하고자 하는 쪽에서 증명해내야 할 부분이다.
피고인이 현금 수거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부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황상 ‘조금만 더 주의하였더라면 한번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보이스피싱 범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이유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논리는 결국 고의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해 과실까지도 고의에 포섭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헌법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모든 피의자,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일관되게 형사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이 유죄라는 점은 검사가 입증해야 하고 유죄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증거가 없다면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미필적 고의의 인정 범위를 확장한다면 결국 국가(수사기관과 법원)가 단지 범행의 수단으로 이용된, 어떻게 보면 피해자로도 볼 수 있는 선량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게 되는 격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최린아 법률사무소 혜결 변호사(형사법·가사법 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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