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이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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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이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게

서한나 '보슈' 대표

  • 승인 2022-10-31 08:35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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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나 대표
중도일보에 MZ세대 필진들이 모였다. 'D-MZ'(Daejeon-MZ generation)는 변혁의 최전방에 서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기 위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떤 날 무대에 오른 나는 장난스러워지고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 무대에 오른 나는 긴장해서 긴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건 내가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런 자리에는 오지 말자고….

어떤 글을 쓸 때 나는 장난스러워지고 내 손에서 나오는 모든 글자의 합을 보며 피식피식 웃고 어딘가 그럴듯하다고 느낀다. 어떤 글을 쓸 때 나는 이 글이 나를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지 않아 낯설고 지금 내가 글을 쓰려고 버둥거리고 있구나 하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다짐한다. 쓸 마음이 없을 때는 쓰지 말자고….

지금 쓰는 책은 과정이 흥미롭다. 어떤 날에는 장난스러운 문장을 쓰고 어떤 날에는 점이 오백 개 찍힌 세 문단을 쓰며, 어떤 날에는 쓰지 않고 인용문을 정리한다. 하루에 정해진 분량을 쓰는 작가들이 있지만 내게 맞는 방식은 정해둔 시간만큼 생각하는 것이다.



책의 테마는 현대의 우정이다. 우정의 주체는 여자들이다. 방금 말한 단어들이 전부 까다롭게 느껴지지만, 쓰기로 했으니 매일 생각을 한다. 우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생각하고, 우정에서 단어를 연상한 후 디비피아에 검색한다. 우정과 유머, 우정과 여자 화장실, 우정과 드라이브… 검색이 재미있었다고 해서 쓰기에 돌입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문장 이전에 공간이 먼저 등장해야 한다. 쓰기가 들어찰 공간.

글이 진짜로 시작되는 순간을 돌이켜보면, 실내에 들어와 외투를 벗기로 결심하는 순간과 닮았다. 팔짱을 풀고 상대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는 순간, 턱을 괴고 여기가 아닌 저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순간. 그때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이동이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기 위해 걷고 있을 때, 내가 어떤 여자를 멋있다고 느꼈던 날이 떠올랐다. 그 사람과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하고, 그걸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무척 충만한 시간일 것이라고.

공상일 뿐이었지만 기억 속에 머물다 온 나는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여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글은 미치게 재미있을 거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하니까….

시월의 공원에서는 이야기 대신 파쿠르를 했다. 여자들과 공원을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다. 코치가 설명했다. 파쿠르는 길, 코스, 여정이라는 뜻입니다. 자기만의 길을 내는 스포츠예요. 난간을 걷고, 맨몸으로 높은 곳에 오르고, 벤치를 넘어다녔다. 오늘의 운동이 종료됐을 때, 사람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길 가다 벤치가 보이면 넘어다니고 싶을 것 같다고….

코치는 일화 하나를 전해주었다. 파쿠르하는 사람한테 누가 물었대요. 언제부터 파쿠르를 시작했냐고. 그 사람이 말했대요. 당신은 언제부터 파쿠르를 안 했느냐고. 옆에서 누가 말했다. 소름. 파쿠르는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다. 모든 움직임을 하는 우리이거나.

팔꿈치가 까지고 머리칼이 끈적해지고 숨에서 바깥 냄새가 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움직임 이후에 나는 장난스러워진다. 여자에 대해 쓰고 싶어지고, 여자랑 있고 싶어지고, 여자와 뛰고 싶어진다. 우정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졌느냐면, 그저 어린 시절로 돌아갔을 뿐이다. /서한나 '보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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