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축제장 여러 곳에 다녀보고, 축제용 국화 재배농장에도 가보았으나 그 수고로움과 기술을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으랴. 2,000여종에 이르는 품종에 대해 알기 어렵다. 자료에 의해, 동서고금 불문하고 사랑받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아는 바와 같이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지칭된다. 그들은 지칭 이전부터 그림과 글의 소재가 되어 많은 작품이 남아 전한다. 중국 북송 때 문인화 이론이 대두되면서 수묵화가 발달한다. 문인화는 정신을 중히 여겨, 대부분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다. 서예의 필력과도 상통하며, 명대에 이르러 '사군자' 총칭이 생긴다. 사군자 매란국죽은 춘하추동 사계절에 각 하나씩 선정된 것이다. 심미성이 뛰어나고, 선비정신, 은일사상에 부합한다.
눈 덮인 세상에 피어나는 매화는 고사미인(高士美人), 지조와 아름다움의 상징이요, 봄소식을 알리는 꽃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다른 꽃보다 먼저 핀다. 지금도 처음 피는 매화를 즐기려 심매(尋梅)에 열중하는 이도 있다. 난초는 향기롭고 기품 있으며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이다. 국화는 지조와 은일의 상징이다. 심한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절개 지켜 오상고절(傲霜孤節)로 불리기도 한다. 대나무는 아름답고 강해 실용성이 매우 높다. 고매한 덕과 인품, 높은 학문을 나타낸다.
국화는 오연한 성품과 어여쁜 빛깔, 고고한 모습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활짝 웃어준다. 가장 늦게까지 향기가 남는다. 생태적으론 일조시간이 줄어야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여되는 갖가지 의미가 허황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이어령(李御寧, 1934 ~ 2022, 국문학 박사)이 책임편찬 한 <국화>에 나오는 말이다. "국화는 낱낱이 산화(散花)하는 매화꽃, 한순간에 자진(自盡)하는 동백꽃과 다르다. 국화꽃은 참혹한 쇠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동파(蘇東坡, 본명 蘇軾, 1036 ~ 1101, 중국 당송8대가의 한사람)는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를 이기는 가지가 있다(菊殘猶有傲霜枝)"고 했다. 서릿발에 꽃 지고, 잎 떨궈도 이리저리 굽은 가지 드러낸 채 온 몸으로 맞선다. 말라비틀어져 가지를 지키는 처연함과 꼿꼿함에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쓸쓸한 늦가을을 예쁘게 장식하여 뭇사람에게 아주 친근한 정감을 준다. 뜨락에 핀 국화 뿐 아니라 서화, 민화, 생활용품의 장식문양 등,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실생활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는다. 너무 아름다워 먹어치우는 것일까? 봄에는 움, 여름에는 잎, 가을엔 꽃,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 국화로 술을 빚어 마시기도 한다.
국화의 꽃말은 청결, 정조, 순결이다. 꽃 색에 따라 사랑, 지혜, 평화, 감사, 실망, 죽음, 고결, 엄중 등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황금의 꽃이 되기도 하고, 불멸의 꽃이 되기도 한다. 하얀색 국화는 조문의 헌화에 사용한다. 장례식장의 장식, 조화도 흰색 국화를 사용한다. 꽃 자체도 사랑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물질과 형상, 성품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장승업, <백물도권(百物圖券)>, 19세기, 수묵 담채, 38.8 × 233 cm, 국립중앙박물관 |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선비문화는 지조가 핵심이다. 국화도 그렇다. 지조는 삿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당당하다.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 쇠망을 서러워하지 않는 국화처럼,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못된다. 이승을 떠나며 "잘 있어요!" 담대하고 다정하게 손 흔들던 이어령 선생이 떠오른다. 그림도 감상하고 축제도 즐기면서 품격을 생각해보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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