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후 흑석동산성(남문지 부근). 사진제공=대전시 |
특히 발굴된 문지(門址: 문의 터 혹은 문의 흔적)는 대전에서는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전시는 30일 흑석동산성(시 기념물 15호)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과 문지, 인장 형태로 새겨진 명문기와 등 흑석동산성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주요 유적과 유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우선 성의 남쪽에서 발견된 6m 높이의 백제시대 석축(石築) 성벽과 남문지(南門址)가 있는데, 석축에서는 견고함을 더하기 위한 그랭이 기법이 뚜렷했고 문지의 경우는 대전 최초로 발굴됐다.
북동쪽 성벽 구간에서는 석축과 토축(土築 ) 두 기법이 모두 확인됐는데, 석축 구간은 외벽과 내벽을 모두 돌을 쌓아 만든 협축식으로 축조됐고 토축은 높이 2m 내외에 판축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주목할만한 건 정방형의 인장으로 찍어 새긴 명문기와가 무더기로 출토됐다는 점이다. 백제 사비기의 표지(標指)적인 유물로 '인장와(印匠瓦)'라 불리는 이 기와에는 '存○丙辰瓦'가 새겨져 있는데 '丙辰(병진)'은 백제 596년으로 추정된다는 게 대전시의 설명이다.
병진와(丙辰瓦) 명문기와 |
병진와(丙辰瓦) 명문기와 |
흑석동산성은 두계천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삼면은 강으로, 나머지 한 면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으며, 대전에서 충남 연산과 부여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을 내려다보고 있어 이곳을 감시할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흑석동산성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 백제조에 등장하는 나당연합군과 백제군의 격전지로 유명한 ‘진현성’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밀암고성(密岩古城)으로도 불렸다고 돼 있다.
김연미 대전시 문화유산과장은 "흑석동산성의 연대와 조영 주체를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대전 고대사의 새로운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이라며 "흑석동산성의 활용 가치를 높일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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