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1932년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 입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한다. 이들 간 결합하는 힘 '핵력'이 전자기력을 중화시켜 원자핵이 안정한 상태로 유지된다. 원자핵에 갇혀있을 때의 중성자는 무한한 수명을 지니지만, 핵력이 끊겨 양성자와 떨어진 자유 상태의 중성자는 880초 정도만 살 수 있다.
중성자는 투과력이 좋아 물질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때 요긴하다. X-선이 무거운 원소 촬영에 유리한 반면, 중성자는 가벼운 원소를 잘 포착한다. 따라서 철강·조선 분야 비파괴검사, 수소자동차 연료전지의 수소 추적, 배터리 소재 연구에서 최고의 과학적 도구로 꼽힌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고속열차, 신재생에너지 송전에 사용하는 '전력반도체'를 만들 때 중성자가 활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부도체인 실리콘(Si) 단결정에 중성자를 쪼이면 실리콘 원자핵 일부가 인(P)으로 바뀌어 반도체가 된다. 인을 직접 투입하는 일반적인 화학공정보다 인이 균일하게 분포돼, 대전력을 다루는 고급반도체 소자 생산에 적합하다. 핵의학 영상진단 또는 종양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도 중성자를 이용해 생산된다.
원자핵을 떠난 자유 중성자는 어떤 삶을 살까? 원자로에서 중성자는 '핵분열'을 통해 탄생한다. 중성자가 우라늄과 같이 핵분열이 가능한 원자핵과 충돌할 때, 질량수가 큰 원자핵이 가벼운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핵반응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2~3개의 중성자가 탄생한다. 이후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원자핵이 분열하는 연쇄반응은 1942년 미국 엔리코 페르미가 설치한 '시카고 파일 1호' 원자로를 통해 입증됐다. 인류 최초로 중성자 연쇄 반응을 제어한 사건이었다. 원자로에서 세대 간 소멸되는 중성자 수와 핵분열로 탄생하는 중성자 수의 비율을 '임계'라 부르는데, 원자로는 이 비율을 1로 유지할 때 연속 운전되도록 설계돼 있다.
막 태어난 중성자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고속중성자'라 불린다. 이들 중 3%가량은 원자로 밖으로 빠져나간다. 고속중성자 상태에서는 핵분열 연쇄반응에 2%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속도를 낮춰줘야 한다. 국내 월성원전은 중수(heavy water)를, 다른 원전들은 경수(light water)를 감속재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약 13%의 중성자는 소실된다. 열중성자도 1% 정도는 원자로 밖으로 누설되고, 남은 중성자의 30%는 노심을 구성하는 물질에 흡수돼 사라진다. 험난한 생존 과정을 거친 끝에 중성자는 대략 절반 정도 살아남는다. 이들은 핵연료에 흡수돼 후세대 중성자를 탄생시킨다.
중성자는 인류에게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주는 팔방미인이자,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중성자의 삶은 원자로 크기, 감속재의 종류, 노심구조물의 형상 등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원자력 과학자들은 중성자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 개수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임계를 유지하는 것에 주력한다.
오늘날 원자력계에는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개발이 화두다. 전 세계 수많은 연구원 및 기업들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중인데, 알려진 것만 70여 종이 넘는다. 우리나라도 경수, 가스, 액체금속, 용융염 등 다양한 냉각재를 사용하는 SMR을 연구 중이다. 2030년대에는 SMR이 전력생산뿐 아니라 공정열 제공,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등 다양한 용도로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계방법은 각양각색이지만, 핵심은 원자로에서 중성자의 삶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원자력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중성자가 살아남는 공간인 '노심'을 제어하는 기술에서도 으뜸이다. 치열한 SMR 경쟁에서 승리해 'K-원자력'으로 세계 원전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날을 그려본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