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팔방미인 중성자의 삶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팔방미인 중성자의 삶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승인 2022-10-27 16:50
  • 신문게재 2022-10-28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지구상 모든 물질의 근원인 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 중 양성자(+)와 전자(-)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한다. 양성자와 전자는 서로 잡아당기고, 양성자와 양성자, 전자와 전자 간에는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원자핵 속 양성자들은 어떻게 모여 있는 걸까? 바로 '중성자' 덕분이다.

1932년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 입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한다. 이들 간 결합하는 힘 '핵력'이 전자기력을 중화시켜 원자핵이 안정한 상태로 유지된다. 원자핵에 갇혀있을 때의 중성자는 무한한 수명을 지니지만, 핵력이 끊겨 양성자와 떨어진 자유 상태의 중성자는 880초 정도만 살 수 있다.

중성자는 투과력이 좋아 물질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때 요긴하다. X-선이 무거운 원소 촬영에 유리한 반면, 중성자는 가벼운 원소를 잘 포착한다. 따라서 철강·조선 분야 비파괴검사, 수소자동차 연료전지의 수소 추적, 배터리 소재 연구에서 최고의 과학적 도구로 꼽힌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고속열차, 신재생에너지 송전에 사용하는 '전력반도체'를 만들 때 중성자가 활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부도체인 실리콘(Si) 단결정에 중성자를 쪼이면 실리콘 원자핵 일부가 인(P)으로 바뀌어 반도체가 된다. 인을 직접 투입하는 일반적인 화학공정보다 인이 균일하게 분포돼, 대전력을 다루는 고급반도체 소자 생산에 적합하다. 핵의학 영상진단 또는 종양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도 중성자를 이용해 생산된다.

원자핵을 떠난 자유 중성자는 어떤 삶을 살까? 원자로에서 중성자는 '핵분열'을 통해 탄생한다. 중성자가 우라늄과 같이 핵분열이 가능한 원자핵과 충돌할 때, 질량수가 큰 원자핵이 가벼운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핵반응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2~3개의 중성자가 탄생한다. 이후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원자핵이 분열하는 연쇄반응은 1942년 미국 엔리코 페르미가 설치한 '시카고 파일 1호' 원자로를 통해 입증됐다. 인류 최초로 중성자 연쇄 반응을 제어한 사건이었다. 원자로에서 세대 간 소멸되는 중성자 수와 핵분열로 탄생하는 중성자 수의 비율을 '임계'라 부르는데, 원자로는 이 비율을 1로 유지할 때 연속 운전되도록 설계돼 있다.



막 태어난 중성자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고속중성자'라 불린다. 이들 중 3%가량은 원자로 밖으로 빠져나간다. 고속중성자 상태에서는 핵분열 연쇄반응에 2%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속도를 낮춰줘야 한다. 국내 월성원전은 중수(heavy water)를, 다른 원전들은 경수(light water)를 감속재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약 13%의 중성자는 소실된다. 열중성자도 1% 정도는 원자로 밖으로 누설되고, 남은 중성자의 30%는 노심을 구성하는 물질에 흡수돼 사라진다. 험난한 생존 과정을 거친 끝에 중성자는 대략 절반 정도 살아남는다. 이들은 핵연료에 흡수돼 후세대 중성자를 탄생시킨다.

중성자는 인류에게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주는 팔방미인이자,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중성자의 삶은 원자로 크기, 감속재의 종류, 노심구조물의 형상 등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원자력 과학자들은 중성자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 개수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임계를 유지하는 것에 주력한다.

오늘날 원자력계에는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개발이 화두다. 전 세계 수많은 연구원 및 기업들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중인데, 알려진 것만 70여 종이 넘는다. 우리나라도 경수, 가스, 액체금속, 용융염 등 다양한 냉각재를 사용하는 SMR을 연구 중이다. 2030년대에는 SMR이 전력생산뿐 아니라 공정열 제공,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등 다양한 용도로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계방법은 각양각색이지만, 핵심은 원자로에서 중성자의 삶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원자력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중성자가 살아남는 공간인 '노심'을 제어하는 기술에서도 으뜸이다. 치열한 SMR 경쟁에서 승리해 'K-원자력'으로 세계 원전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날을 그려본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