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통속직공만국경위지구식방여고금도(大淸統屬職貢萬國經緯地球式方輿古今圖, 1800년, 반남박씨 경주공파 기탁, 56.6×92.8cm / 족자 : 59.4×96.3cm). |
지도의 채색본으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한 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도 소장처가 많지 않으며, 국내에서도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 매우 희귀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지도는 1834년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와 같이 중간(重刊)한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의 바탕(모본) 자료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소장과 그 전래경위가 명확하고 당대 정부 고위층의 세계지리 인식과 그 영향을 살펴볼 가치가 높은 자료로 평가받는다.
동일본 다른 지도에 비해 보관 상태가 좋은 편이고, 적도와 황보 부분에만 채색된 다른 지도와 달리 전체를 채색한 채색본인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로 작용한다.
고산사 아미타불화(高山寺 阿彌陀佛畵, 조선후기,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33호) |
불화의 중앙에는 본존인 아미타불이 대좌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고, 그 앞쪽에 좌협시인 관음보살이 정병(淨甁)을, 우협시로 대세지보살이 경전을 들고 있다. 아미타삼존 주변으로 6위의 보살, 10대 제자, 제석과 범천, 사천왕, 팔부중 등 호법 신중이 시립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미타불의 주변을 둘러싼 권속들은 뒤로 갈수록 크기가 작게 표현돼 주존인 아미타불을 시각적으로 부각하면서 존상들의 위계를 보여준다.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보살들은 정적인 표정으로 주존을 둘러싸고 있는 반면, 십대제자는 자유로운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으며, 호법 신중들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수호신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향좌측 하단에 화기가 있으나 제작 시기와 화사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전시지大田市誌'(1978)에 "가경 19년인 1815년 을해년 8월에 운문사(雲門寺)에서 조성하여 회덕 식장산 고산사로 이안(移安)했다. 증사(證師)는 한월당(漢月堂) 성유(性宥) 화사(畵師)는 완진당(翫眞堂) 정안(井安)이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제작 시기와 증사와 화사, 불화의 제작지 등을 알 수 있다. 운문사는 경북 청도 운문사로 추정하고 있으며, 양식적으로도 운문사에 남아 있는 불화와 공통점을 보인다.
석조석가모니불좌상 및 복장품 일괄(石造釋迦牟尼佛坐像及腹臟品一括, 근현대,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59호, 여진불교미술관). |
석조석가모니불좌상의 복장품 일괄. |
높이 118㎝ 크기 불석(佛石)으로 밑면의 복장공을 통해 원문과 함께 복장물(발원문, 후령통, 금강경, 다라니)이 발견됐으며, 발원문은 종이에 묵서로 봉안 사찰과 제작 연대, 불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소임(所任)으로 밝혀졌다.
원 봉안처는 논산 제왕사(帝王寺)로 불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계유년사월팔일 癸酉年四月八日'라는 내용을 통해 '논산군'의 지명이 사용된 시기인 193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상을 만든 장인은 비구 최성필, 사미 하봉규, 신사 이경섭, 비구 박선종으로 일제강점기 승려들의 시대상을 알려준다.
불상은 각이 진 방형 얼굴에 가는 눈과 오뚝한 코, 넓은 입술, 입술의 양 끝을 올라가게 처리해 웃는 듯한 인상을 주며, 편평한 가슴과 각이 진 어깨에 무릎을 매우 높게 처리했다.
대의는 편단우견이며 오른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에 주름을 잡아 장식적으로 표현했으며, 왼손은 무릎에 놓아 손바닥을 위로,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항마촉지인을 해 석가여래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불석이라는 재질적 특성과 함께 규모는 크지만 형식화된 외형적 모습에 편단우견의 대의, 장식적인 옷 주름, 변형된 수인 형식 등에서 이전 시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기의 변형된 특징을 보이며, 외형적 장식에 치우친 옷 주름이라든지 간략화된 복장물 등으로 일제강점기 불상과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왼쪽 위 사진) 둥근뚜껑모양 청동기(圓蓋形銅器)과 (왼쪽 아래 사진) 대쪽모양 청동기(劍把形銅器).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한국식동검(細形銅劍), 방패모양 청동기(防牌形銅器), 거친무늬 청동거울(粗文鏡). |
(왼쪽부터)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와 출토유물 탁본 자료.<출처=대전시립박물관> |
0.5m(너비)×2.2m(길이)×1m(깊이) 규모의 석곽을 설치한 무덤으로 안에서 대쪽모양 청동기(劍把形銅器), 방패모양 청동기(防牌形銅器), 종모양 청동방울(銅鐸), 거친무늬 청동거울(紋鏡), 둥근뚜껑모양 청동기(圓蓋形銅器), 곱은옥(曲玉), 한국식동검(細形銅劍),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등이 출토됐으며, 당시 지역 유력자의 묘로 추정한다.
앞서 해방 후 한국식 동검이 출토되는 무덤 유적으로는 가장 오랜 편에 속하고 다량의 유물이 출토돼 당시 최대의 수확으로 평가된 바 있다.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던 유물과 함께 원로 고고학자로 전 대전보건전문대 교수를 역임한 故 이은창 교수와 아들 이성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에게 발굴 당시 촬영했던 괴정동 유적 전경과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을 탁본한 사진 자료를 함께 전시한다.
故 이은창 교수는 다방면에 걸쳐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학자로 그 선대는 강화학(양명학)을 가학(家學)으로 이어받은 명문가로 조선후기 '육진(六眞)', '팔광(八匡)'으로 일컫는 학자를 배출했다. 이성주 교수는 2020년 가전(家傳) 유물과 대전과 충남 지역 관련 고고미술자료 100여 점을 대전시립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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