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 대표 |
마침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유성경찰서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고 지인이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왠지 집에 이런 허탈감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져서 집 근처 유성경찰서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네 주민들과 어우러진 작은 음악회는 수통골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부부의 통기타 연주로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올려본 하늘은 어둠으로 사라지기 전의 아쉬움을 달래듯 조금은 붉고 여전히 푸르고 그러면서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문득 통기타의 잔잔한 선율, 오묘한 하늘빛 그리고 제법 쌀쌀한 바람을 타고 나는 어느새 3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아! 이곳은 유성경찰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내가 다니던 유성여고의 등굣길이었다는 게 갑작스레 떠올랐다.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주변 풍경에 잊고 있었던 여고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학교에 늦어서 뛰어가던 길,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나와서 팥빙수를 먹으러 가던 길, 비장한 마음으로 학력고사 대신 처음으로 치러지는 수능시험을 준비했던 길이었다. 비가 오면 다리에 물이 넘친다고 일찍 학교에서 보내주던 낡은 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 공간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남겨놓았던 것이었을까 그냥 같이만 있어도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그 친구는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어느덧 작은 음악회에서는 "나는 사업만 하느라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것은 아닙니다만 노래가 그렇게 좋습니다"라고 하시며 준비하신 중절모를 쓰시고 수줍게 웃으시던 어르신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라는 가사를 이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어르신의 표정에는 마치 숨겨진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너도 지금 행복하냐고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나의 꿈, 나의 행복이 무얼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학원에서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기에 부랴부랴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하지만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가을밤의 작은 음악회는 나에게 조금은 연약해도 되고 가끔은 안쓰러워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서둘러 저녁밥을 차려주고 오늘따라 반찬 투정 없이 맛나게 먹는 아들이 고마웠다. 잠시 쉬었다가 설거지를 하려는데 무언가 아쉬워서 음악회가 끝나고 오면서 들렀던 편의점에서 산 맥주캔 하나를 살며시 들어본다. 휴대폰을 가져와서 부엌에서 유튜브로 어르신이 부르셨던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을 틀어놨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이러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피식 웃어본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무언가가 변했고 오늘 하루 종일 고민했던 일들이 내일이면 다 해결될 것 같은 날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보듬어주고,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은 가을밤의 작은 마법 같은 음악회 덕분이 아닐까? 쓸쓸함을 주었다가 위로를 주었다가 모든 이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라는 법정 스님의 '가을은' 이란 글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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