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품격 놀이, 김홍도의 <단원도(檀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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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품격 놀이, 김홍도의 <단원도(檀園圖)>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2-10-21 14:01
  • 수정 2022-10-21 14:0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무엇이고 배우면 구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운전 배우면 도로에서 질주하고 싶고, 노래나 춤을 배우면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아가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매주 열리는 노래교실이 있다. 상기한바와 같은 사람 심리를 강사가 배려한 것일까? 수업 시작 전, 먼저 온 사람에게 앞에서 마이크 잡고 노래할 기회를 준다. 필자도 그 시간이 재미있어, 잠시 들여다보며 구경한다. 연예인이 따로 없다. 아예 무대의상 입고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열창한다. 나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진지함이 지나쳐 과하게 감정 몰입하기도 한다.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음향이 조악해서 그렇지 꽤 잘 부르는 사람도 있다. 실력의 고하가 문제되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은 최고의 스타인 것이다. 잘하면 잘해서 듣기 좋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웃음을 선사한다. 서로가 즐겁고 흥겹다.

점차 격이 높아진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스스로 연구한다. 매주 발전 변모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 눈비비고 봐야 한다. 실제 공연장이나 경연대회에도 나선다. 본격적인 무대에 서보고 싶은 것이다.

우아한 모임이나 활동이 있으면 즉석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긴다. 두어 세대 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카메라 소지자도 거의 없었으며, 촬영한다 해도 현상소에 다녀와야 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당시로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쉽게 접하기가 어려워 소중하게 다뤄졌다. 격세지감이다. 지금은 완전 다르다. 휴대전화가 있어 누구나 때와 장소 불문하여 촬영할 수 있고, 그림을 소유할 수 있다. 뿐인가? 장식할 수 있으며 가감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간직하기도 수월해, 가볍게 여기고, 오히려 분실하기가 쉽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그림으로 남겼다. 기록화, 의궤, 초상화, 인물화, 풍속도, 고사인물도, 아회도, 아집도 등이 그런류이다.

그림은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조선 화원)의 <단원도(檀園圖)>이다. 그림 위쪽 제발을 참고하면, 1781년 자신의 집에서 가졌던, 정란(鄭瀾), 강희언(姜熙彦)과의 진솔회(眞率會) 모임을 회상하여 1784년 섣달에 그린 것이다. 단원이 영남 지방에 찰방(察訪)으로 있을 때 멀리에서 두 사람이 찾아 온 모양이다. 나이를 떠나 고매한 벗들이 함께하여 한없이 정겹고 즐거웠던 모양이다. 다섯 밤낮으로 술 마시며 원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년전에 있었던 모임을 회상하여 강희언에게 그려 주었다. 방문 앞에서 거문고 타는 사람이 김홍도이고, 앞쪽에 앉아 오른손 손짓하며 시를 읊조리고 있는 긴 수염의 인물이 정란이다. 그 사이에 비스듬히 앉아 둥근 부채 들고 감상하는 이가 강희언이다.

한쪽에 시동이 공수하고 서서 대기하며 함께 즐기고 있다. 그들 앞쪽에 지필묵이 놓여있고 술병도 있다. 방안에는 서책이 쌓여있고, 당비파(唐琵琶)로 보이는 현악기가 걸려 있다. 화병에는 공작의 깃털이 꽂혀있다.

단원도
김홍도 <단원도> 1784년, 지본담채, 135.3 x 78.5cm 개인 소장
뜨락으로 내려서면 오동나무가 서있고, 학이 춤이라도 출 듯 귀 기울이고 있다. 담장 안팎으로 고사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마주보고 있다. 담장 밖에는 누군가 태우고 온 말과 말구종이 쉬고 있다. 마당엔 연당이 있고, 그 앞에 태호석이 있다. 바위 아래에 들마루가 놓여있고, 산과 숲, 자연이 울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는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도 즐겨 그렸다. 6폭 병풍, 8폭 병풍, 선면형 등 여러 점이 전한다. 서원아집도는 중국 북송 영종(英宗)의 부마였던 왕선(王詵)이 수도 개봉(開封)에 있던 자기 집 서원(西園)에서 당시의 유명한 문인묵객을 초청하여 베풀었던 아회(雅會)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왕선을 비롯, 소식(蘇軾), 채조(蔡肇), 이지의(李之儀), 소철(蘇轍), 황정견(黃庭堅), 이공린(李公麟), 조보지(晁補之), 장뢰(張?), 정가회(鄭嘉會), 진관(秦觀), 진경원(陳景元), 미불(米?), 왕흠신(王欽臣), 원통대사(圓通大師), 유경(劉涇) 등의 16인(진사도(陳師道)를 넣어 17인이 되기도 함)이 모여 시를 쓰고 읊으며, 휘호를 쓴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며 담론을 즐기는 모습이다.

단원은 우아한 것을 알게 되면 곧 실천에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늘 그러한 삶을 추구하였다. 다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가 찾아 즐겼던 고품격 놀이는 지금도 귀감이 된다. 시서화는 물론, 음악을 즐겼으며, 집기 하나하나, 나무, 풀 한포기도 예사로 들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삶이면 누군들 고결해지지 않으랴. '감명자 진구부리(鑑明者 塵垢弗理)', 맑은 거울은 먼지와 때를 감추지 못한다. 나아가 세상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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