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얼마 오르지 않아, 왼편으로 외솔 최현배선생님의 기념비가 보여 잠시 그 앞에 마음을 모았다. 선생은 한글 보급에 힘썼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살이도 했으며 가로쓰기 체계를 확립하고 한글전용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전이 한글날이었으니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애쓰셨을 선대들의 업적을 기리기에 딱 맞는 타이밍이지 않은가.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한글을 지켜냈기에, 최근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우리 문화와 더불어 한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에 갔을 때 그 대학이 자랑하는 배움의 전당(Cathedral of Learning)이라는 곳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세계 30개국의 강의실과 교육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놓은 국가실(Nationality Room)에 우리나라의 '명륜당'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서 엄청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집속의 집처럼, 멋진 한옥을 재현하고 그 벽에는 한글에 대한 상세한 설명판을 붙여놓았다. 다른 어느 교실도 그들의 언어에 대해 그리 설명한 곳은 없었다. 아니, 그렇게 설명할 만한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한글은 우리가 쓰는 말에 맞는 글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으며, 쉽게 익히고 늘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다는 창제 정신이 돋보인다. 그리고 발음기관의 모양이나 발음 작용을 본떠 만들고, 게다가 하늘, 땅,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했다니 그 독창성이나 과학성, 그리고 실용성이 가히 세계 최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무렵 필자는 한국어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수강하고 있던 중이라 그 감동이 더욱 컸다.
2007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세우기 시작해 현재 전 세계 84개국에 244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요즈음 특히 K-문화 열풍에 힘입어 우리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새삼 감탄하고 있다 한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한글을 우리는 소중하게 쓰고 있는지, 그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나 경험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몰랐던 순수 우리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아름답게 느꼈는지. 복잡한 사회에서 고유어만 사용할 수야 없겠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고, 가능한 많이 사용하는 것이 언어를 제대로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멋진 언어를 비속어나 나쁜 말에 쓴다면 우리말의 품격을 너무 떨어뜨리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언어의 습득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자기가 들었던 언어를 말하게 되고, 읽었던 언어를 글로 쓰게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누구라 할 것 없이 적절한 언어로 제대로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가능한 글을 많이 읽어야 어휘력도 늘고 표현 방법도 다양해져서 글을 잘 쓸 수 있다.
최근 수업할 때나 보고서를 보면서 느끼는 바로는 학생들의 어휘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극히 짧아지는 말, 빈약한 표현이 대부분이기에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낮은 수준이라는데 더욱 낮아지고 있다 한다. 바라건 데 젊은이들이 전자책이라도 좋으니 글을 많이 읽어, 어휘력을 키우기 바란다. 독서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독서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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