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지역 법조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2021년 1월 보이스피싱조직의 지시를 받은 A씨는 충남 보령까지 찾아가 피해자로부터 대출전환을 위한 보증금 명목으로 1600만원을 받아 100만원씩 약속된 계좌로 송금했다. A씨는 2020년 12월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해 알게 된 대출관리사라는 업체로부터 일급 5만원, 건당 10만원, 시간외 수당 5만원 제안을 받고 이번 일을 시작했다. 보이스피싱조직에 속아 보험금을 목적으로 600만원을 준비한 피해자를 서구 괴정동에서 만나 현금을 받아오는 등 8회에 걸쳐 가담했다. 결국 A씨는 사기혐의로 대전지검에 기소돼, 5개월간의 재판 끝에 대전지법 1심에서 10월 12일 가까스로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조직이 구직사이트에 등록된 채권관리서비스 업체처럼 위장해 A씨가 범죄단체라고 파악하기 어려웠고, 수금액과 상대 인적사항, 이동할 장소, 수금 이후 무통장 입금계좌 등의 지시 사항만으로 상대를 속이는 보이스피싱임을 인지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테크 투자전문회사에서 출장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일을 시작한 B씨도 보이스피싱 처벌에 직면했으나 가까스로 옥고를 피했다. 메시지로 담당자와 연락만으로 2021년 8월 대전 대덕구에서 피해자로부터 830만원을 수령하는 등 총 5회에 걸쳐 5762만원을 일당에 전달하는 일에 가담하고 말았다. B씨는 인지장애를 지닌 채 일에 가담했고, 가족에게 고수익 알바를 알렸다가 범죄연루를 의심한 가족에 의해 자수해 대전지법 형사2단독은 2022년 10월 7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다수 현금인출 가담자들은 중형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피해자 12명에게서 2억4000만 원을 받아 전화금융사기 일당에게 전달한 30대에게 사기와 절도 혐의로 징역 2년 6월이 선고되기도 했다.
문제는 범죄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단순 가담자들이 보이시피싱에 계속 유입되면서 반대로 계획적으로 가담한 전달책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또 전화나 메시지만으로 지시와 송금 등이 이뤄지다보니 조직의 실체를 파악해 주모자를 검거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에서 큰 금액이나 분할 송금할 수 없도록 규제가 강화되면서 피해자를 직접 대면해 돈을 수령하는 형태로 보이스피싱 수법이 바뀌고 있는데 현금수거를 정상적인 알바로 위장시키고 있다"라며 "법원에서도 범행에 대한 상당한 증명을 요구하고 있어 인출책 신규 유입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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