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 피로 회복에 좋다기에 수시로 물 타 들고 취침 전에 먹은 것이 빈 병이 되었다. 마침 간장을 담을 만한 용기가 마땅찮아 빈 병을 씻어 거기에 간장을 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꿀병으로 행세하던 병(甁)이 금세 간장병으로 바뀌었다.
같은 병이라도 거기에 향수를 담으면 향수병, 농약을 담으면 농약병, 모기약을 담으면 모기약병, 꽃을 꽂으면 꽃병, 꿀을 담으면 꿀병, 간장을 담으면 간장병이 된다.
그 병(甁)에 어떤 내용물을 담느냐에 따라 맥주병도, 술병도 되는 것이다.
그릇도 마찬가지다. 비어 있는 그 속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이름이 결정된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물을 담으면 물그릇 물대접, 나물을 담으면 나물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된다.
주전자도 바가지도 똑같은 등식이 적용된다. 같은 주전자라지만 물을 담으면 물주전자. 차를 담으면 찻주전자, 술을 담으면 술 주전자가 된다.
바가지도 용도상 물을 푸는데 사용하면 물바가지, 인분(人糞)을 푸는데 쓰이면 똥바가지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인데 선하게 살면 선인(善人), 악하게 살면 악인(惡人), 남의 재물을 훔치는 사람은 도둑, 염치가 없이 막 돼먹은 사람은 만무방, 옳은 일로 사는 사람은 의인, 남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포용력 있는 사람, 폭행, 협박 따위로 사람을 간음하면 강간범, 사람을 죽인 사람을 살인자,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운 사람을 파렴치한이라 한다.
우리 사람도 병(甁)이나 그릇 주전자 바가지와 같이 내면을 무엇으로 채우고 사느냐에 따라 또 어떤 행동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부류가 결정된다.
그릇은 용량에 따라 아주 작은 종지부터 밥그릇 국그릇, 찌개용 냄비, 물동이,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그 크기가 다양하다.
사람도 밴댕이 창자같이 한 종지 물도 담기 어려울 정도 소견이 좁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의 그릇 됨됨이가 너무나 크고 아량 있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하해 같은 포용력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 백범 김구 선생 같은 분이 바로 그런 그릇 됨됨이로 사셨던 위인이라 할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일인 헌병이 한국 청년을 매수해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허나 사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이 청년은 붙잡혔다. 사람들은 그 청년을 처형하기 전에 김구 선생에게 데리고 왔다.
"당신을 암살하려던 청년을 붙잡아왔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자 김구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이 청년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 청년을 붙들고서, "내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한국 청년을 여기서 만나다니 실로 감격스럽다."
김구 선생님은 자기를 암살하려고 권총을 들었던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서 기뻐하였다. 그 바람에 청년은 백범 선생의 인품과 포용력에 감동되어 독립군으로 끝까지 백범 선생님께 충성을 다하여 헌신했다고 전한다. 김구 선생님은 사람의 그릇됨과 그 내심이 하해 같이 넓은 포용력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분이셨기에 우리 민족이 숭상하고 존경하는 위인이셨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그릇 됨됨이와 그 내면에 담을 수 있는 용량!
나는 과연 어떤 병(甁)으로, 어떤 그릇으로 살고 있는가?
독약을 담은 독약병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사람의 몸에 이롭고도 좋은 보약을 담은 병(甁)으로 살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무엇도 담을 수 없는 깨진 그릇으로, 한 종지 용량도 안 되는 그릇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또 어떤 바가지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가?
좋은 걸 모두 담는 복 바가지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똥바가지로 살고 있는가?
가슴이 뜨끔하면 가슴에 손을 얹고 맥을 한 번 짚어 볼 일이다.
그릇과 바가지는 속이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그 속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과 바가지의 이름이 결정된다.
나는 어떤 그릇으로, 어떤 병(甁)으로, 어떤 바가지로, 살고 있는가 ?
혹시 나는 빈 그릇으로, 깨진 그릇으로, 아니면 똥바가지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가슴에 한 번 손을 얹져 볼 일이로다.
물 한 대접 용량도, 한 종지 물도 담을 수 없는, 그런 내면을 가진 그릇은 아닌지 심안(心眼)의 바로미터를 재어 볼 일이로다.
나는 어떤 그릇으로 살고 있는가?
백범 선생님의 하해 같은 포용력의 그릇이 하늘에만 있는 별이 아니어야겠다.
남상선 / 수필가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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