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간부가 자신이 회사로부터 신뢰받고 성장하게 된 이야기를 한다. 발로 뛰던 시절 열심히 일하다 보니 포상 휴가가 주어졌다. 회장이 불러 칭찬하고 격려하며 봉투를 주더란다. OO만 원인데 휴가비로 쓰란다. 회장이 보는 앞에서 돈을 세어보니 회장이 말 한 것보다 1만원이 더 많다. 한 번 더 세어봤는데 결과가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만원을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사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거래는 분명한 것이 좋다. 불필요한 오해 방지를 위해 마주앉아 확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필자 같으면 감사 인사는 하겠지만, 세어보지 않고 받아 넣었을 것이다. 거래가 아니요, 상대방을 신뢰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라고 말한데 방점이 있을까?
살면서 시험 받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없다. 상대방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탓이리라. 순수를 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대인관계에 복잡한 미로 같은 장치는 없다. 때문에 상대 의중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진솔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다. 이따금 그것을 알아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의도된 시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험은 기대치일수도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한 반응을 주목하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누군가로부터 늘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악의 수렁으로 유인하는 미끼도 덥석 문다. 선으로 이끄는 선의도 거부한다. 상대의 특별한 의도가 아니더라도 배려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한번 쯤 고려할만 하다.
세상에는 반복되는 것이 있고, 변화하는 것이 있다. 반복은 지혜의 바탕이 된다. 그를 기준으로 반성도 하고 교훈을 얻으며,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것도 자세히 보면 일정하지는 않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을 믿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를 고려하는 한 단계 높은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배운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 교양을 익힌다. 배움은 밥 먹는 것과 같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한 배움은 세 가지 만남을 통해 얻는다. 자연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만남에 따라 삶이 바뀐다.
사람과의 만남은 책과의 만남도 포함된다. 책은 지혜의 단초를 제공한다. 자연을 보는 방법, 자신과 만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이 다가온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미화부장은 항상 필자 몫이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것도 따라 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이었던 것 같다. 벽에 족자 하나가 걸려있었다. 누가 걸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실의 지난 주인이 걸었음은 분명하다.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아 그대로 걸어두었다.
"讀書百遍其義自見"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글이었다. 여기서 '見'은 현으로 읽는다. 의미도 나타날 현(現)과 같다. 삼국지(三國志) · 위서(魏書) 〈왕숙전(王肅傳)〉》과 주자(朱子)의 《훈학재규(訓學齋規)》에 나오는 말이다. 살면서 그 말이 맞음도 체험한다. 처음에 어려웠던 것도 반복해서 읽다보면 이해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읽어도 책장 덮자마자 잊는다.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 기억하고 싶은 것에 줄을 긋는다. 다 읽은 다음 줄 그은 내용을 두어 번 반복해서 다시 읽는다. 그래도 기억되지 않아, 옆 사람에게 양해 구하고 그 내용을 설명한다.
독서의 계절이다. 미디어시대이다 보니 책이 외면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독서는 무한한 지혜의 샘이며 상상력의 보고이다. 진지하게 저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한다.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며, 날이면 날마다 책은 가까이 하지 않고 불꽃놀이로 분주하다. 세간에 널리 회자된 이야기하나 들춰보자.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어라, 그러면 한 끼를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아이에게 불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그러면 평생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지속되는 지혜를 얻는 소중한 방법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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