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노무사(노무법인 동인) |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30% 임금 인상을 주장하던 하청노조 측이 사측의 4.5% 임금 인상안을 받아들이면서 극적인 합의는 이뤄졌으나,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조합 집행부 5명에게 제기한 470억원 짜리 손해배상 청구는 결국 취하하지 않는다. 한 명당 94억원. 하청노동자들의 월급이 200만원 초·중반대임을 고려하면 한푼도 쓰지 못하고 약 313년을 모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현행 노조법은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원청을 상대로 점거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10대에 걸쳐도 갚을 수 없는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게 된 것이다.
하청노조의 51일간의 파업으로 입게된 실손해가 470억원에 이르게 될 것인가를 헤아려보기 전에, 과연 대우조선해양은 470억에 달하는 손해액을 5명의 하청노동자에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할까?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는는 결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쌍용자동차가 33억원, 경찰이 14억원 등 총 47억원의 손해배상액이 부과됐다. 두 아이의 엄마가 4만7000원이 든 노란봉투를 한 언론사에 보내면서, 쌍용자동차의 손해배상액을 10만명이 4만7000원씩 나눠내자는 제안을 하면서 알려진 '노란봉투 켐페인'은 이제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인한 손해를 제외한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제한하자는 '노란봉투법' 제정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169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6석의 정의당 및 진보 의원들이 22대 국회의 중요 입법과제로 선정하고, 이번 정기국회에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면서,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제한이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경영계와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이 손해배상 청구가 불법파업의 제동을 거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재산권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 주장한다.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경영계는 프랑스 사회당이 통과시킨 쟁의행위 손배제한 법률이 프랑스 헌법위원회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음을 확인하며 민법의 기본원칙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원리를 부정하는 입법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노란봉투법을 두고 경영계의 무리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률로 제한하겠다는 다수 야당과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는 소수 여당의 치열한 격돌이 예상된다. 이 격돌 속에서 소위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은 치열하게 상대 논리를 공격할 것이고, 야당과 여당, 노측과 사측은 쟁의권과 재산권의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갑론을박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무런 해결 전망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편가르기 논박에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질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시민들은 이미 경제 규모나 문화적 역량에서 많은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K-노동에는 왜 아직도 불법 쟁의행위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지, 10대에 걸쳐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손해배상 청구가 왜 아직도 있어야만 하는지 궁금하다.
이윤의 배분을 둘러싼 노사의 입장 차는 제로섬 게임으로, 한쪽이 많이 가져가면 다른 한쪽이 그만큼 잃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헌법은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해 이윤 배분의 힘겨루기가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뤄지도록 하고 있으며, 상식에 따라 노동권과 재산권이 조화를 꾀하도록 법률로 그 절차를 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노동권과 재산권의 그 끝없는 충돌과 편가르기만을 보아야 할 것인가? 공정하지 못한 규칙이 있다면 바로잡고, 상식에 따라 노동권과 재산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국제 사회에 K-노동의 모범 또한 보여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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