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소장 |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매사에 불만과 투덜거림뿐인 기상캐스터 ‘필 카너즈’는 어느 시골 마을에 성촉절 취재를 떠났다가 자고 일어나보니 성촉절인 2월 2일 어제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필은 전날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짓궂은 장난들을 계속 치지만, 매일 반복되는 같은 날에 지쳐 음독과 권총 자살, 투신자살 등 수많은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눈을 뜨면 다시 성촉절 아침이 반복되는 무한루프에 갇힌 것을 알게 된 필은 동료 리타의 조언으로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서서히 변해간다. 많은 선행과 세심한 배려로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사게 된 필은 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와 함께 자고 일어나보니 마침내 2월 3일 즉 내일이 된다. 내일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뻐하는 필은 리타와 함께 마을에 아예 정착해 살기로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만약 내가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 수 있다면 수많았던 날 중에 어느 날을 선택할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다시 즐길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후회스러운 날로 돌아가 그날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아예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초보 아빠 시절, 일 핑계로 매일 귀가가 늦던 시절 등 특정한 시기를 통으로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한루프 초반의 필처럼 소중한 기회를 기껏 남을 등치거나 장난치는데 써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하루쯤 여유를 가져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골프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힘을 빼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표만 바라보며 달리다 보니 힘이 잔뜩 들어가 가족과 주변 사람들만 힘들게 한 것 같아 지난날들이 후회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다. 초보 아빠는 서툴기만 했고 그래서 괜스레 야단도 쳤던 것 같다. 이제는 다 커서 멀리 외국에서 사는 딸아이는 힘든 것이 없다고 씩씩하게 말하지만 그럴수록 여유롭지 못했던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나 더욱 안쓰럽다. 내 삶의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제 막 시작한 딸아이의 팍팍한 직장 생활에서 왠지 나의 삶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카르페 디엠 - 오늘을 잡아라, 즐겨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려 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살아본 경험으로 같은 하루를 좀 더 잘 살기 위함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비록 같은 하루를 다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새로운 오늘 하루를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면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는 일이 잦다. 어떤 때는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던 영화가 이미 전에 봤던 영화라는 것을 깨닫는 때도 있다. 그런데도 영화의 결론이 가물가물해서 끝까지 재미있게 보게 된다. 나의 오늘 하루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좋지 않았던 지난날들의 기억이 희미하여 희망을 품고 맞을 수 있다.
록밴드 들국화는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하는 거야.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행진하는 거야"라고 노래했다.
나의 오늘은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만,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행진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삶이 채워질 것이다. 오늘 내가 변하면 나의 미래도, 내가 꿈꾸는 세상도 바뀐다.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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