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석 변호사 |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대화 당사자 아닌 사람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에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에서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 행위는 형사처벌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녹음 파일을 녹취록으로 만들어 소송에서 사용하더라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 160620 판결에서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이라도 이를 소송 상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상대방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면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300만원 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주목이 되고 있다. 과거 대법원에서도(2019다 256037 판결)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음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있었기는 했다. 하지만 이 대법원 판결에서는 음성권이 다소 침해됐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이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면서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했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 16620 판결은 종전 대법원 판결과 달리 음성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음성권이라는 것은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에 기초해 '자신의 음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라고 해석된다.
이쯤 되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소송상 계약서가 없거나 증거가 없어서 상대방이 어떤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인정하는 진술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화 당사자 간의 동의 없는 녹음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개정안도 발의되고 있어서 더 많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심지어 최근 스마트폰에는 자동 녹음기능까지 있어서 모든 전화 통화가 녹음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에는 현재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민사적으로는 잠재적 불법행위자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된다.
위와 같은 고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음성녹음 자체는 대법원에서도 인정하는 음성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실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수준에 이를 정도였는지 여부는 대법원에서 판시한 것처럼 '사회상규 위배 여부'를 별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실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 5160620 판결에서도 소송에 사용할 목적이나 의도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듯하다.
그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돈을 빌려주고 돈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데 돈을 주겠다는 녹음을 해서 소송에 사용했다가 오히려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하는 녹음이 사회상규에 위배된 것인지는 누가 판단해 줄 것인가? 라는 의문 속에 마음 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결국 대화를 하면서 녹음한다고 말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녹음한다고 고지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사실대로 말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다만 음성권 침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이 그 자체로 증거로 쓰일 수 없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어떤 식으로 확정될 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을 선뜻 법정에 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생기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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