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변호사 |
여러 연구를 통해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 호흡, 맥박, 뇌파 등 신체활동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짓말탐지기가 개발되었고, 연구기법과 장비가 나날이 발전하며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신뢰도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연구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심지어 97%의 확률로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사실상 증거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보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그것을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대체로 증거신청을 기각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이루어진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할 때 거짓말탐지기 무용론자 중 1명이었다. 검사로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거짓말탐지기 검사 의뢰를 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다른 증거가 명확하다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할 필요가 없고, 다른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증거능력도 없는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용론자의 입장에서도 이미 경찰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이뤄진 경우에는 그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신뢰도가 97%나 된다고 하는데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아무래도 거짓말탐지기 결과에 따라 증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판사들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다. 이미 증거신청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 보니 유죄라는 결과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게 되었으니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꽤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예, 아니오’ 말 한마디의 진실 여부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지나치게 휘둘린다. 게다가 심지어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동의했는지 여부 자체로 예단을 심으려는 시도 또한 계속된다. 마치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계속 떠오르는 것처럼 거짓말탐지기라는 단어가 기록에 등장하는 순간 끊임없이 증거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거짓말탐지기 기계 자체에는 오류가 없을지 몰라도 검사관의 숙련도나 질문 방식 등에 따라 결과 판단에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예컨대 유명한 '이태원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든 데에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대법원에서는 사건 발생 후 약 20여 년이 흘러서야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와 정반대의 결론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의뢰인은 경찰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은 다음에서야 찾아왔는데 그 결과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당시 질문내용이 '고소인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진 사실이 있습니까'였는데, 의뢰인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문득 그때 고소인이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거짓'으로 검사 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고소인의 진술대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천신만고 끝에 의뢰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의뢰인은 억울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과학적 연구결과는 거짓말탐지기의 신뢰성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끝내 찜찜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내 마음, 내 기억을 스스로도 믿지 못할 때가 많은데 기계는 정말 알 수 있는 것일까./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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