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거짓말탐지기 검사 받아야 하나요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거짓말탐지기 검사 받아야 하나요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9-28 11:19
  • 신문게재 2022-09-29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신기용 변호사
신기용 변호사
종종 의뢰인들로부터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질문을 듣게 된다. 그 질문을 한 의뢰인 중 누군가에게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으라고 조언했고 누군가에게는 반대로 조언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전후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는 것이 나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다면 가급적이면 동의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여러 연구를 통해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 호흡, 맥박, 뇌파 등 신체활동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짓말탐지기가 개발되었고, 연구기법과 장비가 나날이 발전하며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신뢰도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연구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심지어 97%의 확률로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사실상 증거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보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그것을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대체로 증거신청을 기각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이루어진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할 때 거짓말탐지기 무용론자 중 1명이었다. 검사로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거짓말탐지기 검사 의뢰를 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다른 증거가 명확하다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할 필요가 없고, 다른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증거능력도 없는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용론자의 입장에서도 이미 경찰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이뤄진 경우에는 그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신뢰도가 97%나 된다고 하는데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아무래도 거짓말탐지기 결과에 따라 증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판사들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다. 이미 증거신청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 보니 유죄라는 결과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게 되었으니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꽤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예, 아니오’ 말 한마디의 진실 여부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지나치게 휘둘린다. 게다가 심지어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동의했는지 여부 자체로 예단을 심으려는 시도 또한 계속된다. 마치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계속 떠오르는 것처럼 거짓말탐지기라는 단어가 기록에 등장하는 순간 끊임없이 증거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거짓말탐지기 기계 자체에는 오류가 없을지 몰라도 검사관의 숙련도나 질문 방식 등에 따라 결과 판단에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예컨대 유명한 '이태원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든 데에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대법원에서는 사건 발생 후 약 20여 년이 흘러서야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와 정반대의 결론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의뢰인은 경찰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은 다음에서야 찾아왔는데 그 결과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당시 질문내용이 '고소인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진 사실이 있습니까'였는데, 의뢰인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문득 그때 고소인이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거짓'으로 검사 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고소인의 진술대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천신만고 끝에 의뢰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의뢰인은 억울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과학적 연구결과는 거짓말탐지기의 신뢰성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끝내 찜찜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내 마음, 내 기억을 스스로도 믿지 못할 때가 많은데 기계는 정말 알 수 있는 것일까./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