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한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
오늘날 과학수사가 중요성을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인권보장의 강화와 증거의 엄격성 및 신뢰성 요청이 주된 원인이다.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 여겨지는 신문 위주의 증거확보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도 법관의 합리적 심증을 형성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의 확보를 통해서 가능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과학수사의 발전을 통해 미제사건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게 만든 사건이 있다. 바로 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이다. 범인이 7세 아동의 얼굴에 황산을 뿌리고 도주하였고, 피해아동은 전신의 40~45%에 3도 화상을 입고 실명한 후 사경을 헤매다 49일 만에 사망하였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끔직한 테러임에도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
과학수사의 1차적 목적은 사건 해결이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먼저 과학이라는 진실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면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은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거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인 과학을 나쁘게 이용할 뿐이다(법과학의 매춘). 둘째, 과학수사는 비록 수사의 중추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본이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사회적 지문'을 통한 수사, 탐문수사, 미행 등 다양한 수사활동이 동반되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셋째, 아무리 좋은 증거라도 재판에서 반드시 채택되지는 않는다. 밥상에 차린 반찬을 반드시 입에 넣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증거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표현을 되씹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토대로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수사관 개개인의 기량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과학수사의 의의는 단순한 사건해결에 있지 않다. 특히 강력사건 피해자 시각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최후의 목적일 것이다. '제주도 오픈카 사망사건'은 초기에는 단순한 사고로 처리되었지만, 정밀한 과학수사를 통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수사관들은 고인을 대신하여 현장을 설명하고, 실체규명을 책임지며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가 과학수사를 배우고자 한다면 단순히 수사이론과 과학기술을 습득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범죄자 검거와 범죄 예방, 이를 통한 안전한 사회 만들기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피해자 및 사회의 안녕 차원에서 범죄는 그 어떤 것도 가볍지 않으므로 범죄의 무거움과 검거의 절실함은 공동체 모두가 느껴야 한다. 범죄예방과 더불어 잠재적 범죄피해자들에게는 피해현장과 증거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흉폭하고 지능화된 범죄들을 피해자 개개인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과학수사 지식은 피해예방이나 피해중지, 범인검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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