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장 주목받은 군주는 1952년에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 여왕에 즉위하여 올해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닐까.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했으니 54개국을 거느린 영연방 역사상 최장 집권 군주인 셈이다.
여왕의 서거로 새삼 조명을 받는 역사적 장소가 세인트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이다. 영국 왕실의 거의 모든 애경사를 품은 곳이다. 윈저 성의 이 예배당은 길이가 72m나 되어서 'chapel'이란 명칭이 무색해 보인다. 최초의 예배당은 13세기 초 헨리 3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1475년 에드워드 4세는 더 큰 새 예배당을 짓기로 했지만, 공사가 50여 년이나 걸려 1528년 완공 때까지 지붕 없는 교회로 남았다. 사암으로 건축된 이 예배당은 큰 창문과 장식 부벽이 있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후기 고딕 양식 교회 중 하나다. 수평과 수직을 극대화한 '수직 양식(Perpendicular Style)'은 당시 영국 대성당의 전형이었다. 19세기에 수차례 대규모 보수 공사를 하면서 왕실 납골당이 들어섰다.
이후 왕실 가족의 거의 모든 장례식은 이곳 예배당에서 거행되었다. 'Queen Mum'으로 알려진, 조지 6세의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은 공식적으로는 런던에서 애도되었지만 이 예배당에서 또 다른 장례식이 있었다. 그러나 다이애나 비는 찰스 왕세자의 이혼한 아내라서 이런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왕실의 여타 구성원들, 특히 공주와 왕자는 프로그모어(Frogmore)에 위치한 왕실 묘지(Royal Burial Ground)에 묻혔다. 이곳은 늪지대에 사는 개구리 우는 소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윈저 성 내의 사유지로,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왕자가 안치된 왕릉도 있다.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는 조지 3세, 조지 6세, 'Queen Mum', 필립 공 같은 고위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도 2021년에 사망한 남편 옆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다.
우리는 분명 오늘날의 세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지도자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여왕은 투표권을 행사한 적은 없지만 수십 년간 국가 원수로서 정치적 사건에 영향을 미쳤고, 여권은 소유하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외교의 힘을 새로이 정의했다.
여왕은 일생 동안 영연방을 넘어 100여 국가를 여행하며, 과거를 직시하고 대처하는 시도를 단행했다. 그녀는 근대성과 군주제가 만나는 길을 닦았고, 헌신, 열정, 존엄으로 그 길을 이끌었다. 식민지 이후의 세계가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영연방을 결속시켜 영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게다가 지난 10년은 4명의 수상들이 이끈 빈약한 내각의 시기였다. 이 10년은 사회적 분열과 불협화음의 시기였다.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든 브렉시트든 코로나19 대응이든 영국은 사회적 응집력이나 사회적 합의를 잃은 듯했다. 그러나 여왕은 영국을 하나로 묶은 희귀한 접착제 역할을 했다.
1952년 취임 때 여왕은 신의 종임을 선언했다. 그녀가 단독으로 군주제의 정의를 바꾼 셈이다. 그녀의 변함없는 헌신 덕분에 미래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종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봉사' 약속은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행위이지만, 찰스 3세에게는 그것이 대관식 순간부터 그의 머리에 씌워진 왕관보다 더 무거운 짐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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