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국가 및 지방 정부가 '예술품 수장'에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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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국가 및 지방 정부가 '예술품 수장'에 나서야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9-2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안견(安堅)하면 조선 최고의 화가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비단에 수묵담채로 그렸다. 세로 38.7㎝, 가로 106.5㎝로 요즘 화선지 1/4보다 약간 큰, 그리 크지 않은 그림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 ~ 1453, 세종의 3자, 서예가)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설명하고, 그를 들은 안견이 묘사한 것이다. 안평대군이 제서(題書)와 발문을 쓰고, 세종대왕의 시, 20명의 문사와 고사 한 명이 쓴 23편의 찬문이 이어져 있다. 그림과 찬문 모두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몽유도원도>가 안타깝게도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지만, 학계에서는 조선 세종대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 작품으로 본다. 오늘은 내용이나 작가보다 안평대군의 존재, 수장가에 대하여 주목하고자 한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세종대왕의 고명대신(顧命大臣)들과 친밀하였으며, 인사 행정의 하나인 황표정사(黃票政事, 대신들이 천거한 인물 중에 누런 종이쪽지를 붙이면 왕이 그대로 임명)에 관여할 정도의 실력자로 부상하기도 한다. 학문을 좋아하고 시·서·화에 능해 삼절로 불렸다. 뿐만 아니라,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대에도 명망이 높았다. 궁중에 소장된 많은 진적(眞蹟)을 보고 수련하였으며, 상당한 서화 수장가(收藏家)이기도 했다. 대부분 중국 서화가의 명적이었다고 전한다. 스스로 즐겼음은 물론, 그와 교유한 인사들에게 명적 접할 기회를 주어 서화 발전에 커다랗게 기여하였다.

안견 역시 그의 수혜자이다. 덕분에 옛 그림 통하여 좋은 것은 취하고 절충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후대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화가가 늘면서, 우리 예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다른 작품을 많이 보고, 창작하고, 생각하는 것이 창작 공부의 3요소 아닌가? 볼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안목이 커짐은 당연지사다. 간단히 서술해서 그렇지, 안평대군이 없었다면 과연 안견의 존재가 가능했을까? 우리 회화사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대가(大家) 옆에는 항상 미술품수장가가 있다. 당시에는 단순 호사가로 비쳤을 수도 있다. 지금 바라보면 수장가의 역할과 기여가 얼마나 큰가, 절로 느끼고 보인다. 생각나는 몇 사람만 살펴보자.

정선(鄭敾, 1676 ~ 1759)은 안동김씨 일문의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김창집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된다. 사천 이병연(李秉淵), 관아재 조영석(趙榮?) 등과 교류하며 시와 그림을 나눈다. 이병연은 13,000여 수에 달하는 시를 썼다고 전하며, 그림의 투자 가치에 눈떴던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정선의 <인왕재색도> 소재가 되기도 한다.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에게는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이 있었다.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하고 그 역시 서화가였으며, 평(評)자였다. 진경산수의 발전, 풍속화와 인물화의 유행, 서양화법의 수용, 습기(習氣)·속기(俗氣)가 없는 글씨와 문인화로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작품을 소장하였는지 기록은 없으나 당대의 탁월한 감식가였으며 평론가였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 역시 수장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중국 청나라 유학자이며 엄청난 수장가인 옹방강(翁方綱)을 만나면서, 고증학을 비롯한 학문과 예술의 폭을 넓혔다. 그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것이다. 그의 의리를 높이 산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상적 역시 서화금석수집가였으며 12번이나 중국을 여행하며 <세한도>에 청의 문사 16인으로부터 제찬(題贊)을 받기도 했다. 스승을 빛내는데도 열중했던 것이다.

조선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컫는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에게는 이응헌(李應憲)이 있었다. 이응헌 역시 장인 이상적과 마찬가지로 역관이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 머슴이었다. 이응헌은 말할 것도 없고 덕분에 변원규(卞元圭, 한성판윤), 오경연(吳慶然, 서화가 오경석의 동생) 등을 만나 명적(名蹟)과 다양한 화보를 접하며 식견을 넓혔다.

오경석, 오세창은 부자 수집가이다. 오세창까지 내리 8대가 역관인 역관가문이다. 오경석은 청나라에 수없이 오가며 서화와 탁본, 서책 등과 각종 골동품 사들였다. 그를 보고 자란 오세창 역시 수집가였으나 호사 취미가 아닌 애국이었다. 오세창은 서예가, 전각가이며, 금석학 연구가다. 3·1운동을 주도한 33인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문화재가 일본으로 마구 유출되는 현상이 개탄스러워, 사재 털어 1,000여점이 넘는 서화를 사들인 민족문화지킴이다. 그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서화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출판했다. 서화사의 보배 같은 책이 되었다.?또 다른 역사를 만든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간송 전형필을 비롯한 많은 수장가가 등장한다. 시작은 개인의 호사나 투자를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국은 예술품 보전에 기여한다. 보전뿐인가, 신문화 창달의 밑거름이 된다. 이제 그 역할을 자치단체가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옛 문화재를 보전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보전 가치가 있는 예술품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선정 ? 구입 ? 수장 ? 전시 및 게시 대여)이 필요하다. 어떤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작가의 대표작 구입으로 창작의욕을 돋구고, 수장고를 지어 보전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문화복지의 시작이며 문화예술 시대를 맞이하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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