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십대 여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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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십대 여자의 두 얼굴

정온/ 수필가

  • 승인 2022-09-22 17: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한마디로 "너무 애쓰지마, 노력하지마, 신경 쓰지마"로 축약된다. 여자 나이 쉰 살이면 깨닫게 되는 생활 철학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 '에리니에스'



아름답기로 유명한 그리스 여신들 중 흉측하고 기괴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신과 인간들 모두에게 존경 받는 여신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에리니에스'이다.

메두사처럼 뱀이 머리를 휘감고 있고, 피눈물을 흘리며 한쪽 손에는 횃불,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자뿐만이 아니라 죽어있는 자까지도 반드시 찾아내어 끝까지 복수와 저주를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 法典, 영어: Code of Hammurabi)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이다. 놀랍게도 이 법전은 무고죄를 가장 먼저 언급한다.

제1조에 보면, 사람이 타인에게 죄를 돌려 살인죄로 그를 고발하고 그에게 확증하지 못하면, 그에게 죄를 돌린 자(즉 고발자)를 죽인다. 함무라비 법전은 '동해보복'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피해자가 받은 피해 정도와 동일한 손해를 가해자에게 내리는 보복 법칙"이다.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법칙이다. 고대인들도 잘 아는 것을 왜 작금, 우리는 알지 못했는가!

삶에서 힘든 순간은 항상 있었다. 30대의 나와 40대의 나, 그리고 지금 50대의 내가 느끼는 미움과 정념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다르다. 모든 게 다 공허하고 내리막길을 향해 달리는 늙음의 초입에서 핵폭탄을 온몸으로 받아낸 기분이었다. 갑자기 나 자신도 거실바닥에 화장지를 마구 풀어놓고 식탁 위에 우유를 엎질러 놓고 해맑게 웃고 용서받고 싶어진다. 그게 갱년기를 맞은 내가 느끼는 여자 나이 오십인 것이다.

40년 전 마당 가운데 수도를 두고 이집저집이 마구 엉켜 살던 그때 도둑이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내 방문앞에서 주무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지난 추석날에 폭탄 선언을 했다. 가족들이 회의를 한 결과 어머니 왈,

"늙어빠진 쭈글탱이를 누가 받아줘?"란 의견과 큰사위의 "눈도 안 좋으셔서 러시아군 우크라이나군도 구별조차 못 하실 텐데 참으세요!"란 의견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아버지의 의견은 묵살 되었다. 돈키호테같은 아버지 덕분에 가족 모두 웃고 지나갔다.

중국엔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란 속담이 있는데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란 말이다. 군자라면 순간적인 흥분으로 허술하게 복수하려 해선 안 되고 10년을 들여서라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은행에서 뒤따라 들어오시던 어떤 여사님께서 "뒷모습 보고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하셔서 하루 종일 어떻게 해야 뒷 모습과 앞 모습의 나이를 동전처럼 같은 값을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하다 보낸 하루였다. 외모비하(外貌卑下)(?) 발언 한마디에 행복이 날아가 버린 하루! 지나친 빛과 거름으로 오히려 쪼그라드는 화초 같은 하루! 과거의 상처가 가시가 되어 여기저기 마구 찔러대는 하루! 이게 바로 '50대 여자의 하루'이다.

여러 경전에 나타난 금강역사의 얼굴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마음은 한없이 선량하다 했다. 겉에 드러난 얼굴은 비법(非法)을 저지르는 자들을 타파하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며, 또 다른 얼굴은 부처님을 항상 옆에서 모시는 호위자의 모습이다. 호위자의 모습은 군중들의 눈에는 띄지 않고 부처님과 그 반대자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이다.

50대의 양면성을 가진 여성의 모습도 이 금강역사의 모습처럼 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과 병동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들이 손금 봐달라고 자꾸 조르는 하루였다.

정온/수필가

정온-수필가
정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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