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수몰지구 유감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수몰지구 유감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 승인 2022-09-21 15:07
  • 신문게재 2022-09-22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백남우=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올해 추석 연휴는 코로나19 위엄이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귀성인파로 전국의 도로가 붐볐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고 소통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듯하다.

수년 전 가을 무렵, 대청호반의 시퍼런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백발 성성한 어르신의 사연이 궁금해 여쭤본 적이 있다. 어르신은 "물에 잠긴 용계동이 고향이었고, 그리움에 호반 아래 고향을 쳐다본다"고 답했다. 그동안 대청댐이 완공되고 물이 차오르자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옮겨 정신없이 살았다는 어르신은 이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조상 대대로 살던 정든 고향이 그리워 가끔 이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명절이 찾아오면 고향을 떠나온 이산가족들은 두고 온 고향의 가족과 산천이 그리워 애태우며 눈물을 짓는 이들이 많다. 그분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꿈이라도 꿀 수 있지만, 수몰지구 이주민들은 대청호 물을 다 퍼내기 전에는 고향을 다시 밟을 수 없는 현대판 실향민이 됐다.

필자는 대청호 수몰 지역에 외가가 있어 어렸을 적 추억과 그곳의 풍광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도 물속에 잠긴 외갓집을 찾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60·70년대 외갓집을 갈 때는 대흥동이나 대전역 앞 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회인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도중에 인동시장을 거친다. 장을 본 사람들이 가득 탄 버스 안은 북적거렸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정보교류 장이 되기도 했다. 시장에 참외를 내다가 판 이야기, 담배 농사 수매 이야기, 장바구니 밖으로 비쭉 내민 동태 대가리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재밌게 듣던 기억이 난다.



버스는 판암동을 지나 세천고개를 넘어 비포장도로인 회인으로 접어든다. 주안천을 따라 조금 가면 동면 장터가 나오고, 몇몇 사람이 내린 후 모래재를 넘으면 탑산에 이른다. 탑산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는 빛바랜 충암 김정 선생 부인 송 씨의 '정녀'가 버티고 있어 무섭기도 했다. 탑봉 너럭바위 밑에는 금강이 굽이치는 소용돌이에 해마다 여러 사람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을미모텡이를 돌아 배말(주촌리)에서 흘러나오는 개울 다리를 건너면 '쇠똥말랑'(여름 홍수에 금강이 불어나 소를 메어놓은 언덕까지 물이 차 소똥이 젖어 말랑거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나온다. 그곳에서 버스를 내리면 버스는 휘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부동 쪽으로 사라진다. 금강 변의 하얀 모래사장의 물새 소리만이 시골의 적막을 깬다. 우람한 멋진 노송이 몇 그루 서 있는 창말동네를 지나 우무깨(우무동)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면 잘 가꾼 담배밭이 보이고, 물뱀과 잠자리가 많은 둠벙을 지나 팽나무 거리가 나온다. 동내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 팽나무 열매를 씹기도 하고 열매를 던져 지나는 사람을 맞추기도 했다. 조금 더 가면 마을의 비보 숲인 장승거리가 나오고 장승 역할을 하는 문인석 하나가 서 있었다. 이어 국사봉이 나타나는데, 광산김씨 집성촌인 안골마을 냇가를 따라가면 흙벽의 담배건조장이 보이고 개울가 공동우물을 지나 돌담길 마지막 집이 외갓집이었다. 오느라 힘든 몸으로 외갓집 사랑채에 누우면 담장 밖 밭을 가는 농부가 늙은 소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랴. 워워, 으쯔쯔~" 조금 떨어진 시골 방앗간의 발동기 돌아가는 '통통통'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유년의 추억이 생생하다.

아름다운 대청호에는 수많은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물속에 잠들어 있다. 댐 건설로 정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의 빈민으로, 서해안 간척지 등으로 이주하여 힘든 삶에 고향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이제 백발이 되어 인생을 되돌아볼 시점에 고향 인근을 찾아도 그들이 돌아갈 고향은 없다. 고향은 이미 시퍼런 대청호 깊은 곳에 용궁이 되어 과거의 가슴 시린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다.

대청호는 호반 둘레길 등 시민들의 명소가 되었다. 이제 아름다운 경치에 가려진 수몰 지역 마을과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 관심을 모아야 할 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사설] '폭행 사건' 계기 교정시설 전반 살펴야
  4. 금산 무예인들, '2024 인삼의 날' 태권도와 함께 세계로!
  5. 학하초 확장이전 설계마치고 착공 왜 못하나… 대전시-교육청-시행자 간 이견
  1. 화제의 대전 한국사 만점 택시… "역경에 굴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2.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3. 대전용산초 교사 사망사건 가해 학부모 검찰 기소… 유족 "죄 물을 수 있어 다행"
  4. [국감자료] 교원·교육직 공무원 성비위 징계 잇달아… 충남교육청 징계건수 전국 3위
  5. [사설] CCU 사업, 보령·서산이 견인할 수 있다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