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노동으로 자본주의 양식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고 물자가 풍족해지면 구성원 모두 나눠가지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나라가 잘돼야 국민이 잘 살게 된다며 노동자들에게 열심히 일할 것을 주문했다. 기업이 성공해야 노동자들도 잘 산다고. 그런데 전태일은 왜 분신자살을 했을까. 거기다 IMF 경제위기의 후유증은 노동자에게 너무 가혹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되고 빈부격차가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커졌다. 진보정권조차 서민과 중산층의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재벌의 전횡을 견제하기는커녕 이들과 결탁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짰다. "자본주의는 모든 땀구멍과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태어난다"고 한 마르크스의 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난 5월 대법은 정년 연장 등의 보상조치 없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것은 연령에 따른 차별에 해당돼 위법하다는 첫 판단을 내놨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이 삭감되는데 그에 대한 정년 연장과 같은 보상조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임금이 줄어든 대신 업무량이나 강도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고 평가방법이 완화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재계는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고 반발했지만 앞으로 임금피크제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때맞춰 부산일보 전·현직 직원 28명도 지난달 임금피크제로 받지 못한 임금 삭감분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운영하지만 곳곳에서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편집기자협회도 설문 조사 결과 대다수가 임금피크제 폐지에 손을 들었다. 임금피크제는 2016년 언론계에 전격 도입됐다. 인건비 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신입사원을 뽑자는 취지다. 언론사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퇴직 2~5년 전부터 월급이 감소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언론계 임금수준이 낮아 퇴직 후의 삶에 걸림돌이 된다고 임금피크 대상자들의 우려가 크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일부 중앙지는 이 제도를 없애거나 좀 나은 방도를 마련하고 있다. 지방 언론은 엄두도 못내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은 가능한가. 인간의 존엄은 보편적인 가치라고 배웠다. 그러나 존엄성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입이 닳도록 부르짖지만 그 영혼없는 멘트 진절머리 난다. 일명 '노란봉투법'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불법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기업에 큰 피해를 준다"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권력자들의 논리다. 더 가슴 아팠던 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일부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욕이었다. 이들은 욕설과 린치를 서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도 그랬다. 기업 편에서 하청노동자들을 비난했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이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신을 노동자로 보지 않을까? 언제까지 자본가의 논리로 세상을 판단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새 교과과정서 '노동'이란 단어를 아예 빼버렸다. 나는 기자라는 직종의 노동자다. 나도 지난 6월부터 임금피크제 대상이 됐다. 월급날마다 힘이 쫙 빠지고 마음이 늦가을 가랑잎처럼 바스라진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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