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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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김용복/극작가, 예술평론가

  • 승인 2022-09-20 10:5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이 유서는 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로 최고의 부를 누렸던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 (Edward Joseph O'Hare /1893~1939) 주머니에서 발견된 아들 '부치 오헤어'에게 남긴 유서였다. 아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살신성인의 모습.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귀감이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는 수많은 동생들과 아들 딸들이 있다. 과연 아버지와 오빠, 형으로서 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 무엇인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교훈 삼아 살기를 권하는 의미에서 이 사람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의 유서를 소개하려는 것이다.

1, 아버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는 어떤 사람이었나?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의 변호사였다. '알 카포네'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 무대로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갱단인 시카고 '아웃 핏 (Chicago Outfit)'의 두목이 된 후,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밤의 대통령' 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알 카포네는 에디 변호사의 수고에 보답하고자 큰 돈을 지불했다. 직접적인 수고비 뿐만 아니라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맨션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컸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에디 변호사는 고심 끝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국에 알 카포네의 흉악한 범죄 사실을 모조리 고발하고, 여태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운 이름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배신을 하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이다.

마피아 두목을 고발할 경우 치뤄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도, 결국 에디 변호사는 오로지 자신의 죄과를 회개함으로써 이름을 깨끗하게 하고, 아들에게 정의감을 심어주기 위해, 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 조직의 두목을 탈세 혐의로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 카포네 일당의 악행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 몸에 총알 세례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아들에게 위대한 '정의'의 선물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몇 가지 물건이 발견됐는데 묵주와 십자가, 잡지에서 오려낸 어떤 시 구절이었다.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2, 그리고 아버지의 유훈을 받고 자란 그 아들 '부치 오헤어'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을 때, 아들인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수행 명령을 받았다.

전투기의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오헤어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오헤어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남아있는 게 없으니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해 돌아가 함대를 구하도록 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어떻게든 모함 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다. 적의 무너진 진형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총탄을 적기에 퍼부었다.

아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이 사실을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사건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구멍 하나만 있을 뿐, 의외로 기체가 멀쩡했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 (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을 특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45년 6월 22일, 영웅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구축함 (Gearing-class destroyer)에 USS 오헤어 (USS O'Hare)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덩치가 워낙 커 'Butch' O'Hare 란 별칭으로 불린 이 조종사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Edward Henry O'Hare (1914~1943)였다. 부치 오헤어는 훈장을 받고 1년 뒤, 한 공중 전투에서 분투 끝에 장렬히 산화한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2차 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49년 9월 19일에,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 (Chicago)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 부자(父子)의 삶이야말로 부전자전의 전형인 것이다.

김용복 / 극작가, 예술평론가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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