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죽순이 나온 후 수십 일이면 거의 다 자라며, 이후에는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1, 2년생은 목질이 약하고, 5년 이상 되면 손실이 발생하므로, 3, 4년생을 벌채하여 사용한다. 보기가 쉽지 않지만 주기적으로 꽃도 피운다. 종류에 따라 달라, 조릿대는 5년, 왕대·솜대는 60년 주기로 핀다고 한다. 꽃을 피운 모죽(母竹)은 말라죽게 된다.
생활과 워낙 밀접하다보니 각종 신화나 전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은둔, 은일사상과 은거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속의 어지러움에 휩쓸리지 않고 죽림에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대표적이며, 은일사상의 시발점이기도하다.
동양 시서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다. 사군자중 하나 아닌가? 사군자는 군자의 상징이요, 군자는 고결하고, 덕과 학식을 고루 갖춘 사람을 이른다. 그중에서도 으뜸이 대나무요, 제일먼저 노래 불러진 것도 대나무다. 죽죽 뻗은 기상이 대단하며, 곧은 정신의 상징이다. 처음 이상으로 휘어지지도 꺾이지도 않는다. 아래로 향한 잎은 겸손이다. 대숲에 이는 청량한 바람소리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 우리 일상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부정에 응하지 않는 것을 대쪽 같다고 하지 않는가? 쪼개면 처음부터 끝까지 반듯하게 나간다. 중간에 옆으로 새는 일이 없다. 사시절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지조와 절개의 표상인 것이다. 사군자와 별개로 매화, 소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리기도 한다.
대나무를 흠모한 시인묵객들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녹경(綠卿, 녹색의 귀족), 죽로지실(竹爐之室, 대나무로 감싼 화로 방, 차 끓일 때 물 끓는 소리가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와 같다하여 죽노라 함), 청허자(淸虛子, 마음을 비운 맑은 존재), 취수 가인(翠袖佳人, 푸른 옷소매를 가진 미인), 투모초(妬母草, 어머니를 시샘하여 빨리 자람), 포절군(抱節君, 절의의 군자) 등이다. 시로 노래한 것 또한 부지기수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대나무의 네 가지 속성을 높이 샀다. 수덕(樹德, 덕이 굳어져 단단하다), 입신(立身, 몸을 세움으로서 성질이 곧다), 체도(體道, 도를 닦아 속이 비었다), 입지(立志, 뜻을 세웠기에 질서 있게 마디가 있다)이다. 묵죽은 고려시대부터 성행하였다. 김부식(金富軾) 집안의 아들 돈중(敦中), 손자 군수(君綏) 등 삼대(三代)와 이인로(李仁老), 정서(鄭敍), 정홍진(丁鴻進) 등이 잘 그렸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나 전하는 작품이 없어 실상 파악이 안 된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 화원 채용시, 대나무가 가장 높은 등급의 화제였다. 사대부들도 즐겨 그렸으며, 후기에는 남종화의 영향으로 화단에서 널리 그려졌다. 이정(李霆, 1554~1626), 유덕장(柳德章, 1675~1756),신위(申緯, 1769~1847)가 묵죽의 삼대가로 불린다. 이정과 신위의 그림은 소개한 적이 있어 오늘은 유덕장의 작품을 선택했다.
유덕장은 숙종, 영조 연간에 살았으며 종2품 벼슬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정의 묵죽화풍을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남아 있는 작품 중에 이정의 작품과 유사한 것이 많다. 당대에도 높이 평가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정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비교해서 보면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은 <설죽도(雪竹圖), 종이에 담채, 138.3×81cm, 간송미술관 소장>이다. 왼편 아래에 "정묘년(1747) 여름, 수운 80노인이 젊은 벗 이사연을 위해 그리다.(歲丁卯夏 峀雲八?翁 爲少友李士淵作)"란 관지가 있다. 대나무가 하얀 눈을 이고 있다. 대나무는 대부분 몰골법으로 그린다. 단번에 그리는 것이다. 눈은 부감법으로 표현하였다. 서정적이고 운치가 넘친다.
대나무의 덕목은 변함없이 지금도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런 기개도 없이 오만하고 신의 없지나 않은지, 감상하며 기상, 겸손, 절개, 지조 등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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