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약식동원(藥食同源), 음식과 약의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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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 약식동원(藥食同源), 음식과 약의 경계선에서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 승인 2022-09-15 16:03
  • 신문게재 2022-09-16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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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오랜만에 추석을 보내기 위해서 가족들이 모였다. 예전만큼 많은 음식을 장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절인지라 전도 부치고 과일도 깎고 고기도 삶는다. 거실에 커다란 프라이팬을 둘러싸고 앉아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이런저런 사는 얘기와 더불어 꼭 나오는게 건강 얘기다. 건강 얘기를 하다보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요즘 건강을 위해 뭘 먹고 있냐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게 홍삼, 오메가3 등이지만, 요즘은 밀크씨슬, 해독주스 등 주제가 많이 다양해졌다. 어쨌건 우리는 무엇인가 먹는 걸로 건강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문득 나를 바라보면서, 뭐 보태줄 말이 없냐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식품이 어떻고 약이 어떻고 잘못하면 독이 되고 이런 말을 할 상황은 아니다. 명절이니까. 그래서 그 때 못 다한 얘기를 한 번 써 볼까 한다.

제도적으로는 약과 식품, 건강기능식품은 엄밀히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식약처에서 각각의 제품 원료로 쓸 수 있는 품목들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약은 대한약전에 수록이 되어 있어야 하고, 건강기능식품은 건강기능식품공전에, 식품은 식품공전에 맞추어서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어떤 제품은 약이고 어떤 제품은 건강기능식품이니까 식품이다라고 엄밀히 구분해서 섭취하는 것은 아니다. 몸에 좋으면, 또는 내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 다 약이다. 제도적인 '약'과 문화적인 '약'과의 사이에는 그 간격이 꽤 있다.

이런 문화는 전통의학에서 약과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식과 약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보지 않았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다. 약과 식품이 같은 뿌리라는 뜻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약은 무엇인가를 섭취한 경험에서 나왔다. 무엇인가를 섭취했을 때 꾸준히 먹을 수 있는 것은 식품이고, 치료효과가 있는 것은 약이고,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은 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약물을 독성과 치료효과, 장기간 복용 가능 여부에 따라 상약(上藥), 중약(中藥), 하약(下藥)으로 구분했다. 상약은 상시적으로 지속적으로 복용해도 되고, 건강을 유지·관리하고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약, 중약은 치료효과가 있지만, 지나치게 오래 복용해서는 안 될 약, 하약은 아주 단기간 필요한 시점에만 써야 하는 약으로 구분하였다. 여기서 상약은 식품과의 경계가 하약은 독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전통약물의 이런 특성은 현재까지도 제도적으로 진행형이다. 상약의 개념은 식약처의 식약공용한약재라는 품목들에 반영되어 있다. 식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한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라지는 입맛이 떨어졌을 때 그 쌉싸름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어 주는 좋은 무침 소재이기도 하지만, 길경(桔梗)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기침·가래의 중요한 약재로도 쓰인다. 더덕은 사삼(沙蔘)으로, 산딸기는 복분자(覆盆子)로 이름을 달리하여, 식품과 약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좋은 식재료이자 약재료로 역할을 한다. 하물며 우리가 매일 밥상에 올리는 쌀밥조차 갱미(粳米)라는 이름으로 한의원 약장의 한켠에 올라 있다. 종종 간과되고 있는 것이 하약의 개념이다. 한약 중에 이른바 독약으로 악명이 높은 부자(附子)의 경우 차가운 몸을 데우는 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약재 중 하나이다. 물론 용법과 용량이 정확해야 한다는 전제이다.



명절 상 앞에서는 하기 힘든 이 긴 설명을 생략하고, 간단히 말한다면, 나는 나의 친척들과 지인들이 식사를 잘 챙겼으면 한다. 당신들이 먹는 밥과 반찬은 모두가 상약(上藥)이다. 얼마나 좋은 약이면, 평생 먹어도(물론 너무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부족하지 않다면) 부작용이 없다. 균형 잡히고 절제 있는 식단을 유지한다는 것은 좋은 약을 하루 세 번 평생 복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강에 위협을 느낀다면, 건강기능식품도 잘 챙겨드시라.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격언이 건강식품의 섭취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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