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코로나19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으며 주택 부족과 보건위생 등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가 늘 얘기됨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했다. 오히려 팬데믹은 칩거 생활 중에도 보이지 않는 사이 다녀가는 고마운 택배 노동자의 존재와 그 많은 요구가 충족되는 놀라운 도시서비스 시스템을 확인하는 기회를 맞았다. 그리하여 에드워드 글레이저 같은 도시예찬론자들이 '도시야말로 가장 인간답고, 건강하고, 친환경적이며, 문화·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찬사를 쏟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몰려 사는 것이 좋기만 한 걸까? 여전히 복잡한 교통문제도 남아 있고 공간적 불평등과 홍수로 민낯이 드러난 반지하주거 등 빈곤문제도 존재한다. 포화상태로 치닫는 쓰레기매립장은 어찌할 것이며 주차와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 갈등이 빚어지는 일이라든지, 전광판을 통해 수시로 알리는 수질과 대기오염 상태도 걱정거리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일임과 동시에 개인으로는 딱히 나서서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 것들이다. 도시공간에 모여 삶으로 인해 일어나되 쉽게 개입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살펴보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이런 공지가 붙었다. "공유자전거와 공유 킥보드는 단지 내 출입을 금합니다", "시설물에 자전거를 묶어 놓지 마시고 자전거는 보관소에 주차해 주세요", "일년생 고추를 심어 공용화단에 내놓으신 세대에서는 다음 해부터는 그러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발포형 세정제를 사용하여 아래층 변기에서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니 자제해주세요." 이런 부류의 일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주 마주하는 상황이지만 처벌받는 수준의 것들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민폐 수준의 일들이다. 문제는 죄는 아니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실이다.
한때 '어글리 코리안'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외국여행 자유화 이후 현지의 문화나 예의에 익숙지 않아 벌인 몰상식한 행동과 추태를 이르는 말이었다. 유명 관광유적에 한글로 낙서를 남기거나 호텔 뷔페 음식을 싸가는 일부터, 이동할 때 상대방과 부딪혀도 사과하지 않는다든지 공공장소에서 여럿이 술 먹고 큰 소리로 떠드는 행위 따위가 꼽혔다. '어글리' 문화는 우리나라 문제만이 아니어서, 1960년대 관광지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로 '어글리 어메리컨'이 처음 등장했고, 1980년대 거품경제의 주역인 진상 일본인들도 '어글리 재패니즈'로 불렸으며, 요즘은 떼로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어글리 차이니즈'가 대세다. 즉, 문화나 수준의 문제지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알고도 범하는 범죄라기보다는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실수에 해당한다. 실수라 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배우고 익혀서 일어나지 않도록 삼가야 한다. 여럿이 함께 사는 도시공간에서 내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꾸준한 자기검열과 가정과 사회에서 에티켓을 얘깃거리로 두루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몸에 배도록 애써야 한다.
도시공간은 함께 살아야 하는 환경으로써 점점 더 압축되고 시스템은 편리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복잡해진다. 배우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도시공간을 멋지게 살아내야 하는 생활양식이다. 많은 사람이 예찬하는 도시공간에서 편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님 말씀을 붙들고 도시공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모두에게 행복하면서도 편리한 도시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엘리베이터 공지는 '공동주택에서의 아름다운 조화와 질서를 위해 많은 협조를 바란다'라고 맺고 있다.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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