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나 대표 |
서른 살이 되면 엠비티아이든 사주든 뭐로든 자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시간에 대한 이해 없이 가슴에 울분을 쌓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던 우리는 사랑스러운 여자의 다섯 가지 특징,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이 되는 법 따위의 카드 뉴스를 경멸하면서도 흥미롭게 넘겨본다.
성차별이 어디있느냐는 말을 듣던 내 또래 여자아이들도 집에서 미묘한 차별을 겪었다. 가령 비스킷은 여아와 남아에게 똑같이 나눠주더라도 보호자가 없는 시간에 남아의 식사를 여아에게 챙기도록 한다든가, 대학 입시 앞에서 남아에게 더 큰 투자를 하는 식으로. 그렇게 자란 여자아이는 책임감과 인내심을 먼저 배운다. 돌리오가 글쓰기보다 위조를 먼저 배웠듯. 이 세상에는 뻣뻣하게 굳은 여자가 많은데, 그건 성취 없이도 사랑받는 안전하고 당연한 느낌을 세상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아이로 자랐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걱정과 불안이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평안, 에이스침대에서 보내는 오후.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애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괘씸해 할지도 모른다. 감히 나를 안 만나주다니.
여자아이들이 이 마음가짐만큼은 닮으면 좋겠다. 눈치 보면서 연애하고 사랑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대신 근거 없이도 자신을 아깝게 여기는 것이다. 내 것이어야 하는 게 내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상태 되어보기. 자기 확신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 여자아이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가능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다. 그래서 아직 나에게 차를 선물해주지 못했다. 볼보에서 출시한 전기차가 아니면 좀처럼 계약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쓸 물건을 고를 때는 보기에 거슬리는 것이 없고 질이 좋은 물건을 선택하는데, 그래봐야 나 혼자 즐길 뿐이며 더러는 티도 안 나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은 기분을 좋게 하려는 시도다. 내가 잘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나를 고양하는 글을 앞에 두고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다. 심오한 우주의 원리나 창세기의 비밀에는 그다지 관심 없다. 내가 그것들을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은 감동받기 위해서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좋고 살맛이 나겠는가 하는 것이다.
삶을 그저 시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죽일지 고안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대개의 문제가 간단해진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없애고, 게임의 구성을 즐긴다. 물론 이 게임은 성가신 데다 어렵다. 종료할 수도, 캐릭터를 택할 수도 없다. 이 게임을 캐릭터 육성게임으로 만들지 서바이벌로 만들지 자유도 높은 게임으로 만들지 옭아매고 손에 땀을 쥐게 할지 성격 정도는 선택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힙이나 쿨에도 호기심을 느끼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핏한 삶이다. 미니멀리즘이나 워라밸 따위의 단어는 핏한 삶과 멀지 않다. 나를 잘 먹이고 입히고 주변을 정돈하고 시간의 흐름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속에 몸과 마음을 제대로 위치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단것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데다 사주도 볼 만큼 봤다면, 믿을만한 센터에 가서 상담받아보는 것도 좋다. 그런 데 가면 내 얘기해야 하잖아, 싫어… 라는 말을 몇 년 전에 했던 것 같은데,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이렇게 썼다. 상담은 정신의 마사지이자 온천물이다.
나는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 없이도 기분이 좋을 때까지. 이미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교보문고 문학 매대에서 삶을 알기 위해 기웃거리는 이들이 있으니까. 나는 이들의 지성과 집념을 믿는다. 어떤 날에는 사랑까지 한다./서한나 '보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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