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모기는 우리 생활과 관련이 많다. 눈에서 벌레 같은 게 날아다니는 현상을 모기 문(蚊)자를 써서 비문증이라고 하고, 속담에도 '모기 보고 칼 빼기', '모기도 낯짝이 있지'와 같은 말이 있다.
흔히들 수천여 종에 이르는 모기는 지구상에서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퍼트리고 성가시기만 하여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실은 모기는 잠자리와 박쥐의 먹이가 되며 꽃 수분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크든 작든 자연을 구성하는 사물들은 얽혀서 서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듯 문명을 이루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기는 여름의 대표적인 불청객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놈과 혈투를 치러야 한다. 그러다가 모기의 입이 비뚤어져 힘을 잃는다는 '처서'를 넘기고 모기가 떡 먹고 죽는다는 '중양절'이 지나면 녀석과 싸움은 끝났다고 여긴다. 그런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즈음에도 모기는 날개를 치는 것이 아닌가. 수천 년 동안 절기에 대해 가진 확고한 믿음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졌다. 이런 일의 근원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놓여있다.
기후가 살금살금 온난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갖가지 변화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사과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 재배 적지는 적합한 일교차를 찾아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고 겨울에는 해충들이 잘 죽지 않아 농사에 골치를 썩인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식물이나 동물이고 할 것 없이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올해 지구촌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폭염과 홍수와 가뭄으로 기온상승의 무서운 발톱이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피서철인 8월 초순에 난데없는 가을장마 같은 폭우가 들이닥쳤다. 한 시간에 141mm, 하루에 400mm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비가 서울 강남에 쏟아졌다. 30년 전쯤 배운 수문학(水文學)에서는 일강우량이 연평균 강우량의 10%를 넘으면 침수피해가 생긴다고 했는데 시간 강우량이 그 수준을 훨씬 벗어났으니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기후변화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약한 개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개체가 감당하기에는 어림조차 안 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 익숙한 생활을 해나간다. 배달되는 택배 상자와 쓰레기 수거 날 배출되는 비닐과 플라스틱을 보면 과히 소비 천국이다. 각종 물건을 너무나 쉽게 온라인으로 살 수 있게 욕구를 부채질하니 과잉 구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일상에서 아끼는 노력과 소비의 절제가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텐데 다들 욕망의 궤도를 올라타고 '공유지의 비극'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모기가 어질지 않듯이 천지도 어질지 않다. 모기는 자기 종족의 DNA를 번식시키기 위해 피를 찾아 찌를 뿐이고 천지는 무심히 흘러갈 뿐이다. 인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한없이 뻗어가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지 모기나 천지 탓이 아니다. 산업화 이후의 기상이변은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큰 세계를 지구라는 유기체가 감당하는데 힘들어한다는 신호다. 우리는 지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더 늦기 전에 감각의 탐닉으로 질주하는 삶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노자는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 있다'라고 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 사태는 그것을 알려주는 듯한데 우리는 때를 모르는 모기처럼 날갯짓을 하니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욕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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