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코로나 19가 발생한 후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코로나 이전엔 먹거리를 그때그때 조금씩 사서 해먹었다. 해서 냉장고가 휑했었는데 지금은 터질 지경이다. 여기저기 도토리를 묻어 놓는 다람쥐처럼 음식물을 쟁여 놓는 것이다. 일종의 불안심리다. 그래서 동네마트에 매일 들른다. 가면 뭐라도 한두 개는 꼭 사온다. 틈틈이 할인 세일도 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먹을거리가 넘쳐나 시들고 썩어서 버리는 채소가 만만찮다. 엥겔계수가 장난이 아니다. 확진 덕분에(?) 이참에 요긴하게 먹게 생겼다. 그래도 부족한 감이 들어 병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고기, 빵, 라면 등 한보따리 또 샀다. 자가격리 만반의 준비 끝!
감빵생활 첫째 날은 하루종일 거실에 큰 대(大) 자로 누워 TV만 봤다. 아무 생각없이 웃음 실실 쪼개는 예능 프로만 골랐다. '라디오 스타' 재방을 두 번이나 봤다. 류승수, 김규리, 김호영, 류희관이 나왔는데 MC 김국진이 배꼽 잡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낄낄댔다. 영화 채널에서 '기묘한 가족', '뷰티풀 뱀파이어' 도 봤다. '뷰티풀 뱀파이어'는 한국영화로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통 뱀파이어 서사를 180도 비트는 B급 영화다. 숨은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경이로웠다. 약을 먹었더니 몸살기도 누그러지고, 먹고 놀고 먹고 놀고. 흠, 감빵생활도 나쁘진 않군.
그런데 이 코로나란 놈이 만만치 않았다. 얼추 나았나 싶었는데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나 숙주를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 불면증과 식욕 저하 그리고 극심한 인후통.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니 아침엔 몸이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었다. 밤새 기침과 목은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거기다 재택 근무라는 명이 떨어졌다. 빌어먹을 구닥다리 노트북은 느려터진데다 글씨마저 깨알 같아서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낮 12시까지 일을 끝내고 나면 식은땀이 쫘악 흘렀다. 30분 정도 뻗어 있다 일어나기를 매일 반복. 부아가 났다. 어떤 사람은 온전히 1주일 쉬다 출근하는데 어떤 사람은 재택근무하고. 젠장, 먹고 사는 거 힘드네.
하루는 밤에 난데없이 황소만한 바퀴벌레가 점보 제트기 소리를 내며 평화로운 나의 집에 침입했다. 깜짝 놀란 나는 신문지를 말아 쥐고 음흉스런 바퀴벌레를 단번에 내리쳐 박살냈다. 가슴이 벌렁벌렁해 서랍에 있던 우황청심원을 마셨다. 이런 푸틴 같은 놈. 바퀴벌레가 남자들 정력에 좋다고 하면 씨가 마를텐데. 허기가 져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 입맛이 없지만 꾸역꾸역 먹었다. 나의 엄마 이순례 여사는 그러셨지. 어릴 때 감기 걸리면 밥만 잘 먹으면 감기가 뚝 떨어진다고. '요맘 때' 콘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요즘 내가 필 꽂힌 아이스크림이다. 얼굴에 검은 비닐봉지 뒤집어쓰고 나갔다 올까? 자가격리 마지막 날, 친애하는 벗들이 간장게장과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며 기운 내라고 격려했다. 노란 알이 가득 찬 게딱지에 금방 지은 쌀밥을 넣어 비벼먹었다. 입맛이 확 돌았다. 게 다리는 쪽쪽 빨아먹고 씹어먹었다. 밥 두 그릇을 해치우고 마동석 주먹만한 복숭아도 쩝쩝.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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