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으나 화면에는 작은 배를 불러 타고 무인도로 가는 남자가 등장한다. 아마도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는 프로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을 싣고 무인도로 건너가는 주인공에게 취재진이 왜 무인도로 가느냐고 질문을 한다. "여기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의 대답은 실로 간단명료했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얽히고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이처럼 호젓한 삶에 대해 꿈만 꾸다가 정년퇴직을 하면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무인도에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해변 둔덕에 지어진 소박한 집, 그 앞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가 근처 갯바위로 가더니 바위에 달라붙은 고동을 채취해 와서 요리를 하며 또 한바탕 즐거워한다. 조금 있다가 다시 보니 이번에는 섬을 떠나 뭍으로 나오고 있었다. 짐작 컨대 도시에 살면서 시간 나는 대로 섬에 드나들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같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하니 그의 친구 누군가도 또 다른 시간 이 곳을 찾아 이런 휴식을 누리겠구나 싶었다.
자기만의 공간. 방송에 나온 그와 그의 친구들은 무인도에 작은 거처를 자기들만의 공간, 자기를 위한 자리로 마련하였다. 그 꿈을 실천하는 용기는 함께 거들고 부담은 나누었겠지만 각자가 원할 때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의 선선한 태도가 큰 상처나 대단한 고통을 겪고 고립을 택한 게 아니라 가정에 대한 책임을 벗어도 될 만큼 충분히 일하고 이제는 자신의 공간에서 즐기며 살려는 건강하게 느껴져서 좋다.
살아 있는 한 어째도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더불어 사는 우리에게는 돌봄,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 돌봄을 누구에게서 받을 것인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때로 질병의 위기에서 가족이나 전문 의료인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겠지만 건강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돌봄을 받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고통스러운 경우가 허다하다. 한편 돌보는 이의 입장을 생각하면 또 어떤가. 이는 생각만 해도 지치고 더없이 힘든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돌보는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 그것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실 자기 돌봄이란 개념은 누군가를 돌보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논지에서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 영역에서 널리 퍼져있는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진짜 자신을 인식하고 부족함까지 수용하고 용서하며 다른 이까지도 포용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성숙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기 돌봄의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 공통적인 것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는 경험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긴 오래전부터도 공간은 인간의 심적 작용이 일어나는 마음을 담는 그릇에 비유되어 왔으니까, 온전한 혼자만의 공간에서라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깨닫고 성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눌러놓았던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아닌 척 가렸던 외로움이나 이기심도 떠올리고 다시 생각해보며 그러다가 받아들이고 용서하면 마음이 가벼워지리라. 가벼워져야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겠는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무인도를 자기 공간으로 찾았다지만 훌훌 털고 나서기에는 아직 미진한 나는 어디에서 온전한 나만의 공간, 내 자리를 찾을 것인가. 책상 앞, 자주 가는 카페의 그 자리, 작은 창으로 하늘이 보이는 집안 어느 구석, 산책길 모퉁이에 놓인 의자, 그도 아니라면 자동차 안이라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자기 돌봄의 공간, 내 자리를 가져보자.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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