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민 국회의원 |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13조 원의 세제 감면 혜택을 부여했다. 반면, 내년 예산안에서는 서민지원 정책인 공공임대 예산과 지역 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에 발맞춰 최근 대전시에서도 지역화폐 예산 축소를 발표했다. 고물가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소득 보전 수단을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축소·폐지한 것이다. 현 정부와 대전시의 이런 무리한 방침은 민생을 도외시한 '전 정부 지우기'다.
가계대출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데 대출금리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물가상승률 역시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고금리는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타격과 식자재 비용 부담까지 안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최악의 시기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던 지역화폐 예산을 폐지·축소하는 것은 국민의 삶을 외면한 결정이다.
대전시는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지역화폐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정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무턱대고 '현금 퍼주기 정책'이라고 비판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전시가 주민참여예산을 200억에서 100억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대전시는 예산삭감 이유를 '주민참여예산의 중복투자 가능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으로, 재정분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정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의 주인이 주민이라는 재정민주주의 상징이자 시정을 주민자치로 운영하겠다는 지방자치의 선언이다.
대전시의 주민참여예산은 전체 예산의 0.31% 수준으로 타 지역에 비해 비율이 낮은 편이다. 게다가 총액을 동별로 나눠서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1개 동에 부여되는 금액 자체가 적다. 이에 따라 바닥교체, 신호등 설치, 놀이터 시설 정비 등의 소규모 사업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은 예산으로 인한 중복사업이 일부 있더라도 주민들이 직접 의제를 발굴하여 예산 집행 체감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100억이면 1개 동에 부여되는 금액은 몇천 만원 수준에 불과해 진행 가능한 사업 수가 더 줄어들게 된다.
대전시는 2018년 0.085%에서 시작해 0.31%까지 시민들의 권리를 확대해왔다. 이런 전임 시장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액시켜 주민자치 역량을 늘려가야 한다.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개선하고 제도의 취지에 맞게 시민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대통령 선거 이후 지방 권력까지 거머쥔 국민의힘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책의 취지와 목적을 잃은 채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눈이 멀어 발생한 전형적인 구태정치다. '불도저식'으로 민생에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와 대전시의 정책들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전 정부와 전임 시장의 시정 지우기를 통해 불안함과 혼란을 조성하는 일은 멈추고 대전 시민들을 위해 포용적인 태도로 시정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과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했던 대통령과 대전시장의 당선 인사말이 진심이었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돌아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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