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나눔으로서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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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나눔으로서의 추석

송기한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2-09-05 14:46
  • 신문게재 2022-09-06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송기한교수
송기한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제 며칠 후면, 우리의 고유한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석이다. 추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진 정설은 없다. 시대마다 가을 추수를 기념하여 이루어진 다양한 행사들이 모여서 현재의 추석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가를 굳이 알 필요도 없고, 또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랄까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도만을 알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추석은 대개 몇 가지 의미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하나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고마움과 이를 가능케 한 조상들의 음덕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가을에 이루어지는 이런 행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있는 듯하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도 그러하고, 또 미국의 추수감사절도 모두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두 번째 의미는 나눔의 정신에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었는데, 하나가 조상에 대한 음식 드리기, 곧 제사의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간의 음식 나누기, 곧 공여의 형식이다.

하지만 조상이나 이웃 간의 음식 나누기는 추석 본래의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행사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만의 끼니도 때우기 어려운 시절에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한 끼나마 도울 수 있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논 몇 마지기(옛날에는 논을 평이나 입방미터의 단위로 세기보다는 마지기를 사용했다)와 밭떼기를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세 번째는 만남으로서의 추석이 갖는 의미이다. 실상 명절을 만남의 장으로 생각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적어도 산업 사회가 되기 전에는 가족 간에 서로 헤어져 살아야 할 이유도,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가 형성되면서, 다시 말해 공장 등이 생겨나면서 농촌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거대 도시가 생겨나고, 그 결과 이산 가족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헤어진 가족이 잠시나마 하나의 가정 공동체임을 확인하기 위해 만남의 계기가 필요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런 요구에 응답한 것이 명절의 모임 문화였다.



만남의 장이 되었던 명절은 귀성이라는 새로운 풍속 또한 만들어내었다. 자가용 승용차가 없던 시절, 귀성 열차표를 마련하기 위해 새벽부터, 아니 전날부터 역사 주변에 노숙까지 해야 했다. 여기서 어렵사리 표를 구한 사람은 환호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가보다 몇 배나 더 비싼 돈을 주고 암표를 구해야 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도로의 정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추석은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었고, 그 자장 속에서 여러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눔의 문화일 것이다. 미국에도 이런 문화가 있는데, 바로 할로윈데이가 그러하다. 이때 아이들은 이웃 상호 간에 과자 나누기 행사를 한다. 척박한 산업 사회 속에서 이 조그만 과자를 주고받기 위해 그동안 꼭 닫혔던 현관의 문들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이다. 열린 공간은 곧 소통의 장이 된다. 이는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추석이 든 계절은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전에 우리 모두는 가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도 내가 살던 고향의 어떤 백석군은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었다. 그가 이때 나누어준 성긴 보리쌀로나마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눈물겹게 고마웠던 그의 행위가 아직도 가슴 깊이 새겨있는 것은 그 따듯한 마음씨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란 모두가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극소수라도 따듯한 마음씨의 소유자가 몇 명 있다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선한 것들의 힘은 강하고 세다. 인간의 심성은 본디 선한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오랜 논란이 있어 왔다, 논란은 그저 논란에 불과할 뿐이다. 선한 사람,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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