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보다 뜨겁게 열애를 나누다가 내가 군 복무를 마친 뒤 우리는 부부가 되었지요. 그러나 지독한 가난은 물귀신보다 끈질기고 악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두 아이를 가르치자니 비정규직 박봉의 내 급여만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어려웠지요.
이때 당신은 말 그대로 수호천사(守護天使)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결국엔 당신을 고삭부리 아낙으로 만드는 단초임을 왜 나는 몰랐을까요? 그래요. 온종일 백화점에서 주부 사원으로 일하던 당신은 항상 서서 근무했지요.
그 바람에 시나브로 골병이 든 당신은 급기야 허리수술까지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후 전업주부 노릇만으로도 힘이 달리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이 슬펐습니다. 아무튼 어제 당신은 마침내 퇴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빈 집에 활기가 돌더군요. 당신이 돌아와 안방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문득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요. 가정에는 '내무부장관'인 당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모든 게 잘 돌아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다시는 아프지 마세요!" -
공공근로를 하는 나는 월요일에는 아내의 퇴원 관계로 휴무를 신청했다. 그랬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라고 했다.
예상대로 공공근로장의 담당 주무관은 "오늘은 우천 관계로 휴무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생각지 않았던 휴일이었기에 전통시장에 갔다. 장을 보던 중 소문난 팥죽집이 보였다.
전화를 하니 아내도 먹고 싶다며 사오라고 했다. 포장된 뜨거운 팥죽을 들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지난 월요일에 퇴원한 아내를 보며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쓴 편지다.
그렇지만 우편으로 부치거나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 마음속의 편지로 그치고 만 셈이다. 열애 당시 나는 천안, 아내는 대전에서 살았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유일한 소통 수단은 단연 편지였다.
내가 서너 통의 편지를 보내야만 그제야 비로소 한 장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아내는 편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녀가 혹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나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당시에도 아내는 건강이 안 좋았다. 툭하면 잔병이 찾아와 드러눕기 일쑤였단다. 이런 사실을 알고부터 그녀를 더욱 아끼고 배려했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어언 41년이다.
아들과 딸은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여 외손녀와 친손자가 각각 네 살이다. 신기한 것은 외손녀는 딸과 같은 1월생이고, 친손자 역시 아들처럼 8월생이라는 사실이다. 하여간 아내와 결혼하여 지금껏 고생만 시켰다.
다 무능한 내 탓이다. 더 노력하여 여전히 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련한 아내에게 반드시 호강시켜주고 싶은 게 부족한 이 남편의 소망이다. 그러려고 이번에는 틀림없는 부동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고자 호랑이 눈으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사람 팔자도 달라진다. 이젠 그럴 때도 되었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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