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진 교수 |
중국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뭄과 폭염을 경험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기상 이변으로 인해 막대한 물적·인적 피해를 입고 있다.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의 배출이라는 인류 행위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지구가 처한 기후 변화는 수많은 생명체의 멸종과 심지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것으로 예측하는 뉴스와 연구들이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세계적이며 장기적·점진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각 지역에서 경험하는 양상은 세부적으로 다를 수 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최저기온이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2000년 이후 대전시의 연간 강수량은 오히려 감소했지만, 강수는 장마 기간에 주로 집중된다는 대전세종연구원의 최근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지구온난화의 추세는 확실히 계속되고 있으며 국지적인 기상 이변 역시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비교적 최근의 기후환경을 살펴보면 지구적 기후의 변화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260만 년 전에 시작된 홍적세 동안에도 수십 차례 빙하기와 간빙기가 순환했고 최후 빙하기가 끝난 1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이른바 현세(충적세)는 다음 빙하기가 오기 전까지의 하나의 간빙기로 간주되기도 한다.
고인류학과 지질학에서 확인한 최후 빙하기는 약 11만 년 전에 시작됐다. 그 가운데 2~3만년 전 무렵의 최후 빙하 극성기 동안에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6도가량이나 낮았고, 추운 날씨로 인해 고위도 지방과 고산지대를 중심으로 세계 육지의 1/4이 빙하와 만년설에 의해 덮여 있었다. 빙하와 눈의 총량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았던 만큼 바닷물의 양은 줄어들어 당시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아서 현재의 서해를 포함한 많은 해안지역이 육지로 변했다.
이렇게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동물 사냥과 식물 채집을 하면서 생존했던 인류는 놀랄만한 문화적·예술적 업적도 성취했다. 스페인 알타미라와 프랑스 라스코와 쇼베 등 유럽 남부 동굴 유적의 벽면에는 야생말과 야생소, 코뿔소, 털코끼리 등 현재는 멸종된 당시의 동물들을 생생하게 그린 벽화가 발견됐다. 또한, 동물과 인물의 형태를 갖춘 소형 조형물도 제작해 예술적 표현과 함께 의례와 종교 활동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가 최초로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된 것도 이 최후 빙하기 동안이었다.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 해협이 육지로 변했고 이곳의 해안 지대를 따라 시베리아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인류가 결국 북미는 물론 남미 대륙의 남단까지 진출한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맞아 빙하기의 인류 활동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기후환경이라는 외적 생존 조건의 변화 속에서 그 잠재력을 발휘하는 인류의 적응 능력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지구온난화의 해결책이 5만 년 또는 10만 년 후에나 올지 모르는 다음 빙하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일 수는 없다. 지구온난화는 상대적으로 장기적·점진적인 것이지만, 현재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의 피해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취약 계층일수록 이러한 기후 변동의 피해는 더 직접적이며 치명적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재활용하며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근본적, 지속적 행동과 함께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취약 지역과 계층을 기상 이변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 정부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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