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소장 |
이 사건 진정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시에서 운영하는 지정 게시대에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했는데, 해당 지자체가 지자체장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불허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체제의 필수적 요소이다.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민주사회의 존립 요건이다. 또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생활 속에서 지각한 결과를 자유롭게 외부에 표현하며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이다. 우리 헌법 제21조(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기본권이 아니므로 공익적 목적을 위한 제한이 가능하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1990년 결정을 통해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제한이 헌법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잉금지원칙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익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것을 요구하여 엄격한 조건에서만 제한이 허용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해당 지자체는 두 가지 사유로 해당 현수막을 시 지정 게시대에 게시하는 것을 불허했다고 답변했다. 하나는 현수막에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화투 그림이 포함되어 있어 현수막 지정 게시대에 게시할 경우 청소년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을 규정한 '옥외광고물법' 관련 규정을 근거로 판단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유는 해당 현수막 내용에 피진정인을 탐관오리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에 빗대어 묘사하고, 현수막 내용에 피진정인의 사회적 평판과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을 표시할 수 없다"고 규정한 해당 도의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시했다.
인권위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보호법' 상 '옥외광고물법'에 따른 옥외광고물을 '매체물'로 보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옥외광고물법' 제5조 제2항 제3호의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의 해석과 관련해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성 판단 기준을 참고했다. 그런데 현수막에 포함된 화투 그림이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한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나 '청소년 유해물건'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해당 시에서 '옥외광고물법'을 들어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인권위는 국민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수행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직자의 사회적 평판을 다소 저하시킬 만한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인권위는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대법원 결정을 참고했다.
타인의 인권에 대하여 다소 과도한 표현을 하더라도 공익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자신의 가치판단과 다르거나 단순히 위험성이 예상된다거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임과 동시에 민주사회를 가능케 하는 객관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본권이라는 것을 곱씹어 볼 일이다. /박병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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