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심야에는 더더욱이나. 순간, 아들의 말대로 2인용 병실로 옮길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돈으로 연결되는지라 아내는 여전히 손사래였다.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의식한, 엄마의 어쩌면 당연한 논리의 주장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부자는 마치 대궐처럼 넓은 1인용 병실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서민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환자의 힘에 겨운 숨소리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마침맞게(?) 양희은의 <당신만 있어 준다면>이 흘러나왔다.
=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타 해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 당신만 있어 준다면 /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 준다면 ~" =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떤 죄책감과 회한이 복합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동안에도 고삭부리였던 아내가 모 대학병원에 입원한 건 지난 일요일이다.
이튿날 수술을 받았다. 노심초사하면서 병구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문제는 24시간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이었다.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귀가해서는 빨래도 해야 하는 등 졸지에 '홀아비'가 되고 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오래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똑같은 고난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절감했지만, 사람에게 있어 건강처럼 중요한 건 또 없다. 쥐뿔도 없는 빈가(貧家)의 장손에게 시집온 지 어언 41년.
무능한 가장 때문에 입때껏 한 번도 호강 한 번 누린 적이 없는 가련한 여인은 그저 속절없이 늙고 병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한 번도 이처럼 부족한 남편을 원망하거나 폄훼하지 않았다.
되레 두 아이를 보란 듯 잘 길러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이 여전히 무성하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새벽 3시도 안 돼 일어났다. 밤새 아내는 또 얼마나 지독한 통증에 시달렸을까….
퇴원 때까지 금식이라는데 먹지 못하는 그 간절함은 뉘라서 알까… 달랑 둘이 살던 집에서 아내가 부재중이고 보니 무기력증에 빠지는 건 남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뭐라도 한술 떠야 또 일을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식욕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라면 따위로 대충 때우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된 밥이 수북했다. 남편이 툭하면 지인과 밖에서 밥 내지 술을 먹고 오는 날에도 아내는 항상 내가 먹을 분량의 밥을 짓고 기다렸으리라.
그러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다시금 아내가 가여웠다. 해동한 밥에 물을 넣어 끓인 뒤 깻잎장아찌로 대충 배를 채우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깻잎장아찌 역시 어쩌면 오늘날과 같을 때 먹으라고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지닌 아내가 만들어 둔 '비상식량'이었을 게다. 깻잎장아찌를 먹는데 주책없이 또 눈물이 났다.
여보 ~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도, 돈과 명예도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이대로도 좋아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아무 바람 없어요. 부디 하루빨리 훨훨 털고 일어나시구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구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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