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죽는 순간까지,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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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죽는 순간까지,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8-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더위를 처분(處暑)한 탓일까? 문득, 하늘빛, 바람결의 변화가 느껴진다. 매미의 열창이 귀뚜라미 풍류로 바뀌어있다. 문 두드리며 가을이 거들먹거린다. 가을하면, 독서(燈火可親), 사색, 천고마비(天高馬肥), 결실의 계절 등 관용어가 떠오른다. 오곡백과, 국화, 고추잠자리, 단풍, 바람, 구름,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 등의 단어도 떠오른다.

누구나 벽오동 심어 놓고 봉황이 깃들게 하려 노력한다. 오가던 잡새 몇 마리 잠시 앉아 수군거리다 떠난다. 봄인가 했더니, 어느덧 오동잎 버석대는 소리만 가을밤 다독인다. 옛사람이라고 다르랴? 중국 송대 시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늦가을 바람소리에 시 한수 읊조린다. <추성부(秋聲賦)>이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로 가을이 도래함을 안다. 노년의 쓸쓸함, 가을밤의 서정이다. 부귀공명, 사랑과 욕망도 부질없다 노래한다. 요약해보면 이렇다.

낙엽 지는 소리가 바스락 거리더니, 점점 파도, 폭풍 소리로, 물건이 부딪히고, 쇠붙이가 울리는 것 같다. 마침내 부대가 말달리며 호령하고 울부짖는 소리로 변한다. 무슨 소린지 동자에게 묻자, "별과 달빛이 맑아 천지가 밝고 사방에 인적이 없습니다.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星月皎潔 明下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라 한다. 아, 슬프도다. 탄식하기를, 이것이 가을 소리로구나. 뼈 속 후비는 추위와 스산한 정취의 위력에 가을이 처량한 소리로 애절하게 울부짖누나. 풀이 누렇게 변하고 나뭇잎 시들어 떨어진다. 만물이 노쇠하니 슬프고 상심하게 된다. 온갖 근심이 마음에 일고, 만사가 육체를 수고롭게 한다. 금석 같은 몸도 아니면서 어찌 초목과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하필 가을 소리를 원망하겠는가? 벌레소리만 나의 탄식을 돕는 듯하다.

추성부도
김홍도 작, 추성부도
동자가 대답하는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역시 이 시를 그린 시의도(詩意圖)를 남겼다. <추성부도, 김홍도, 1805, 55.8 × 214.7cm, 이건희 컬렉션, 국립중앙박물관>로, 보물1393호이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 기증품에 끼어 대중 앞에 선보였다. 화제 말미에 '을축년동지후삼일 단구사(乙丑年冬至後三日 丹邱寫)'라 쓰여 있어 1805년 11월, 61세에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후 관지가 쓰인 작품이 없어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 좌우에 메마른 늦가을 산, 거개 잎 떨군 앙상한 나무가 삼삼오오 늘어서 분방하게 춤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마당에 나뒹구는 낙엽으로 방향이 일정치 않은 찬바람이 느껴진다. 스산하다. 중앙에는 마주잡은 3채의 초가가 꽤 넓은 마당과 어울려있다. 중국 고사임을 나타내려는 의도일까 초옥(草屋)은 중국풍이다. 주변 풍광은 완전 우리의 산천이고, 김홍도식이다. 고상한 품격과 예악을 즐기지 않았던가? 단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태호석이 울안 여기저기 놓여있고, 학(鶴)과 파초(芭椒)도 자리한다. 학 두 마리가 목을 길게 빼고, 바람소리에 화답하고 있다. 강약이 잘 어우러진 초목도 단원 산수화의 특징이다. 집 앞쪽 언덕배기 초가 뒤, 대숲 위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린 달이 저녁임을 암시한다.

둥근 창안으로 보이는 사람은 시의 주인공인 구양수이자 화가 자신 일터, 마당에 서 있는 동자와 마주보고 대화중이다. 아이가 무언가 가리키며, 집주인의 물음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 그림에서 배어나오는 쓸쓸함은 갈 길이 멀지 않은 구양수의 심정이자 단원의 심정이리라. 인생 허무함에 대한 탄식, 오만가지 근심이 인다.

그림 왼편에는 상기한 내용의 <추성부> 전문이 쓰여 있다. 인생의 허무함, 쓸쓸함을 그렸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죽음에 직면, 인생을 마감하며 소회를 담은 수작이다. 단원은 작품에 사력을 다했다. 그림의 내용이나 크기가 말해준다.

1800년 그를 몹시 총애해주던 정조 대왕이 세상을 등지자, 후견인이 떠난 충격으로 한 해 반이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1805년 초부터는 자신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급기야, 가을부터는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그린 그림이다.

필자의 스승인 강나루 시인은 마지막 시집을 거듭거듭 썼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좌절과 포기도 있지만, 숨 쉬는 한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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