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 동굴 벽화 혹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생각이 납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의 그림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대한 들소이거나 어마어마한 고래이거나 인간은 그걸 잡아 소유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하늘에 나타난 거대 생물체를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이와 같습니다. 영상을 비싼 값에 팔려는 오빠나 그걸 이용해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가려는 동생도 확인되지 않은 공포의 대상을 포착해 소유하려 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영화는 예술의 기원이 주술임을 확인하게 합니다.
러닝타임 4분의 3이 지나도록 영화는 그다지 흥미진진하거나 긴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30분 아껴둔 힘과 호흡을 쏟아내며 관객을 긴장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잡아먹으려는 비행 생물체의 추격과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도 그것을 카메라로 포착하려는 인물들 간의 대결이 실로 압권입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촬영, 편집, 음악, 조명의 갖가지 테크닉을 최대치로 활용합니다. 때로 공포물의 익숙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가 하면 또 때로 SF 영화의 규칙으로 이행합니다. 그리고 두 장르의 특징을 혼합해 영화적 결과 흐름을 한껏 풍성하게 합니다.
'겟 아웃'(2017), '어스'(2019)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많은 조던 필 감독은 전작들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흑인들의 사회적 문제를 예리하게 제시합니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지상의 것들을 잡아 올린 뒤 금속물을 뱉어내는 영화 속 비행생물체는 어쩌면 필요한 것만 뽑아먹고 필요 없는 것들은 내치는 비정한 사회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괴물이 뱉어낸 금속이라야 기껏해야 동전이거나 열쇠 등 속인데 문제는 그런 사소한 것에도 맞아서 목숨을 잃는 약자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감독이 표현하는 사회 상황적 공포는 이전 공포 영화 장르의 방식들과 달리 독특합니다. 영화의 기원 중 하나인 <움직이는 말>(1876)의 배우가 흑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감독에게 영화가 사회적 차별이나 공포를 이겨내는 예술적 방식임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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