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서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서

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승인 2022-08-24 11:05
  • 신문게재 2022-08-25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서경동
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여름은 여름이다. 덥다는 소리가 절로 나 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공존하듯 빗발치는 빗줄기가 여름은 곧 끝이 날 거야 하는 듯, 바람과 함께 인사를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시간상은 흐름은 다를 수 있겠지만 신이 주신 공평함은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위가 오든 비가 오든 일은 해야 하니까.

며칠 전 학교로 수업을 갔다. 연극반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연극의 3요소가 뭘까?" 하고 질문을 던져 봤다. 손을 번쩍 든 남학생이 큰 소리로 말헸다. "돈이요!" 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질문 하나에도 기발한 대답들이 나왔다.

이 학교 연극동아리 '미장센'에는 20명의 학생이 활동한다. 연극반 아이들은 스스로 동아리 이름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며 10분 영상을 기획하고 있다. 배우며 촬영이며 스태프, 감독 등 각자 자기의 역할을 만들어 운영한다. 동아리 반장은 "저희가 영상을 찍으려 하는데 신체훈련과 리딩을 통한 피드백이 필요하다"며 내게 구체적인 수업 방향을 제시했다.

학생들은 하나라도 얻어가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걸 왜 하는 거야?" 학생의 말은 간단하다. "하고 싶으니까요" "재밌어?" "재밌어요" 아이들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래 맞다. 예술은 재미로 시작하는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일이 되면서 치열해지고 그러다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이걸 왜 하지?" 답이 없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며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일을 하지만 핵심은 재밌다는 거다.

요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을 만들고 있다.

사람마다 '인생 영화'나 '인생 노래'가 있는데 '신의 아그네스'는 나에게 '인생 연극'이다. 어릴 적 지하철에 붙은 연극포스터 속에 아름다운 여배우가 수녀복을 입은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신의 아그네스는 뉴욕의 한 수녀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미국 극작가 존 필미어가 쓴 작품이다. 1982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40년 가까이 전 세계에서 공연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수녀원의 젊은 수녀 아그네스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여 휴지통에 버린 혐의를 받게 되고, 원장 수녀와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 다른 트라우마로 사건을 마주하며 실마리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작품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나에게 연극이라는 연정을 품게 한 첫사랑이다. 연극의 길로 들어서게 한 원동력이고,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갖게 한 작품이다.

공연을 창작하면서 "공연에 대한 나의 연출 의도가 잘 표현될까?"라는 고민으로 불안장애까지 겪는다. 내가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원작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으며 그 과정에서 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내면을 파고 파서 피가 날 지경이다. 그러다 "내가 이걸 왜 하지?"라는 질문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조하다 작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 열쇠를 상자 자물쇠에 넣는다. 상자가 열리고 관객이 그 안에서 내가 보여줄 공연에 작은 공감을 얻어 가길 소망한다.

하지만 불안장애가 무색하게 공연과정이 재미있다. 재미만을 추구할 수 없지만, 과정들 속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 중에 아이들은 들떠있었다. 나의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아 '업! 업!'을 외치며 교실에서 함께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힘 있는 목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에 나도 웃는다. 수업을 마치고 연습실로 돌아와 그 기운으로 우리 팀과도 파이팅을 외친다. 연극은 즐거운 작업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