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 |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 사업 '버터나이프 크루'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사업이다. 성평등 추진 사업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라는 이유라면 말이다. 버터나이프 크루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지금 퇴장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버터나이프 크루는 성평등 문화 확산, 젠더 갈등 완화, 공정한 청년 일자리 환경 조성, 청년 고립·우울감 극복을 위한 마음 돌봄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에 따라 성인지 교육 캠페인, 여성 저임금·고위험 노동자의 인터뷰집 발간, 마음 돌봄 프로그램 등이 실행됐다. 올해에는 성평등 담론을 분석한 뉴스레터 발행, 스타트업 내 성폭력·성희롱 관련 가이드 제작 사업, 지역 여성 청년 예술가들과 시민이 함께하는 연수 프로그램 등이 선정돼 활동할 예정이었다.
참가 선정을 마친 버터나이프 크루는 6월 30일 여가부 장관의 축사와 함께 출범식을 올렸다. 하지만 'FM 코리아'를 중심으로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바로 다음 날 박민영 대변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사업이 내년부터 폐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3일 뒤 국민의 힘 원내대표 권성동 의원 또한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렸다. 여가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해당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여가부는 사업 전면 재검토를 통보하며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중단시켰다.
권성동 의원이 성평등 추진 사업을 향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차가우니 환불해 달라는 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판이 일자 "성 평등과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하면 자기 돈으로 시간 내서 하면 된다"는 말로 응했다. 불과 며칠 전 정부는 UN과 함께 우주 분야의 성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우주와 여성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국제적인 페미니즘은 세금으로 해도 되고 국내의 페미니즘은 국민의 사비로 해야 한다는 것인가. 국내 성평등 사업은 '세금 낭비'라는 프레임을 씌워 일방적으로 폐지해 놓고 국제 성평등 사업을 주최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가부는 사업 중단에 대해 남성 참가자가 적다는 이유를 들었다. 작년에 비해 남성 참가자가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로 반박하자 일반 청년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애초에 남성 참가자가 많은 사업이었다면 '여성 참가자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폐지되었을 리 만무하다. 일반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을 구분하는 것도 문제적이며 일반 청년으로 이루어진 일반 성평등 문화 사업은 무엇인지 또한 의문스럽다. 이렇듯 성평등 추진 사업 폐지를 둘러싼 다양한 형태의 모순은 성평등 추진 사업의 필요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버터나이프 크루 중단 기사에 띄워진 '오직 민생'이라는 표어 앞에서 발언하고 있는 권성동 의원의 사진을 본다. 권성동 의원에게 민생이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유저의 기분인 듯하다. 그러나 민생은 혐오 발언으로 가득 한 인터넷 페이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이 거주하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원짜리의 작은 원룸,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갈 수밖에 없는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 현장, 문화 인프라에서 소외된 지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창작 활동 현장. '오직'이라는 단어로 강조했던 민생은 버터나이프 크루가 뛰어들고 조명했던 바로 그 현장에 살아있다./ 안다혜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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