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희 작가 |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이규희 작가는 1955년 중도일보와 맺은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충남 아산 잔실의 첩첩두메에서 자란 이 작가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대전에서 앞서 정착한 오빠와 생활했다. 중학교 입학실을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을 맞았을 때 피난 보따리에 새로 받은 교과서만 싸서 짊어지고 다녔던 그였다. 그것이 그가 그리는 먼 장래와 이어질 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작가는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하니 시인 한성기 선생님과 서지학자 백순재 선생님이 계셨고, 소설을 써오라는 방학 숙제가 있었다"라며 "2년간 도시락 없는 점심시간에 읽은 소설책들이 밑바닥 실력이 되었는지 짧막한 단편소설이 엮어졌고, '단념'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숙제를 낸 백순재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으니, 학교에 제출한 '단념'을 아주 잊고 있던 중, 한성기 선생님이 중도일보의 고등학생부 문예작품 공모에서 이 작가가 숙제로 낸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 작가는 "그때 '단념'이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고, 중도일보 당선이 운명을 바꾸었다"라며 "사범학교를 졸업해 교사의 길이 예정돼 있었으나, 문학에 대한 동경을 갖고 계셨던지 아버지께서 곧장 나의 대학 진학을 허락하셨고, 국문과를 이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가 사범학교에 재학 때 대전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혼란으로 문학과 예술분야 지식인들이 대전에 머물며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대전사범학교는 시인 한성기 교사와 서지학자 백순재 교사가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마침 여학생 1개 반이 새로 생겨 남녀공학이 되었다.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절로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 작가는 대학 졸업 후 25살 새파란 나이에 소설을 잉태하려 그의 고향이자 첩첩 두메마을로 돌아와 건너방에서 묵묵히 소설을 써나갔다. 뭇새들 조차 곤히 잠든 고요한 밤, 아버지가 뒤란을 걷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완성한 장편소설 '속솔이뜸의 댕이'는 1963년 동아일보 창간기념 장편소설 모집에 당선돼 문단 말석에 발을 붙였다. 1935년 작가 심훈이 '상록수'로 당선된 특별한 공모전에서, 이 작가가 고향을 이야기한 순수 농민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집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로 1998년 제35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하고, 6년간의 자료수집과 인터뷰 그리고도 집필을 완성하기까지 6년이 더 소요된 '그리움이 우리를 보듬어 올 때'는 1980년대 신군부 시대 민주화운동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2010년 가톨릭문학상을 그에게 안겼다.
이 작가는 "아슬아슬한 고층빌딩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추락하지 않게 받치고 있는 것은 농민이고, 농민의 구슬땀이 왜 무의미해야 하는가 묻고자 속솔이뜸의 댕이를 썼다"라며 "중도일보 문예에 당선되면서 운명이 바뀌었고, 소설가의 삶은 한치의 후회함 없이 아버지를 포함해 내가 글을 쓰게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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