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
골동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엑스포가 끝난 뒤 남아있던 흔적들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전시관들은 녹슨 채 흉물이 되어갔고, 롤러코스터와 대관람차를 뽐내던 꿈돌이 동산도 문을 닫았다. 대전 시민들은 그렇게 위풍당당했고 나름의 자랑이었던 엑스포가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성심당'이 대전을 대표하게 되면서 키워드 하나는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사진을 찍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의 밀도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없었다.
지난 주말 11살, 6살 두 아이와 함께 한빛탑을 찾았다. 놀라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어우러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달밤소풍'이라는 이 축제에서 아이들은 물이 발목까지 차는 바닥분수에 뒹굴면서 물놀이를 즐겼다. 바닥분수 주변에는 노는 아이들의 가족들이 제각각 자리 잡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커플들은 푸드트럭 구역과 오밀조밀한 갖가지 물건들을 파는 벼룩시장을 오갔다. 다양한 세대가 뒤섞여 있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놀았다. 뜻밖의 좋은 경험에 너무나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 저릿한 감동을 받았다. 엑스포 키즈가 경험했던 엑스포 당시 한빛탑 주변이 바로 지금 달밤소풍의 밀도였기 때문이다.
엑스포공원의 관리와 운영은 도시 브랜드 구축 및 문화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대전관광공사'가 담당한다. 달밤소풍은 '대전관광공사 관광축제팀'이 민간기획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전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사인 '플래닌'이 2014년부터 '달밤소풍'이라는 축제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무를 주관하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개최하는 축제 비즈니스는 날씨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기 때문에 매년 지속해서 운영하기에는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플래닌의 이경수 대표는 주최 측의 이익이 줄더라도 상생을 목표로 사업모델을 구성하였다. 날씨 영향을 받더라도 참가하는 업체가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도록 이익 공유 체제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드러나는 성과도 상당히 좋다. 2016년은 전체 방문객 10만 명을 유치하였고, 2019년에는 20만 명으로 두 배 정도 성장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2년의 휴식 뒤 올해 현재 42만 명이 찾았다. 이중 외지 방문객 비중이 10% 이상으로 집계되면서 달밤소풍이 대전에서 개최되는 전국브랜드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관광축제팀의 김기덕 팀장은 '지난 10년 동안 엑스포 공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투자한 성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다. 향후 '달밤소풍'이 더욱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인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하였다.
축제라는 문화콘텐츠는 규모가 커질수록 초기부터 기획과 운영을 담당해 온 사업자가 운영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력하여 오랜 시간과 노력과 관심을 쏟는 것이 필요하다. 한빛탑을 중심으로 좌 신세계, 우 DCC 컨벤션센터, 아래로는 갑천, 그리고 엑스포 다리를 넘어 한밭 수목원까지 갑천변에 집적된 다양한 속성의 인프라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앞으로 달밤소풍은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을 대표하는 키워드 하나가 더 생겨난 듯하여 대전 토박이로서 기분이 좋다.
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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