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당신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오래 묵은 된장 같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 과거에는 오랜 기간 우정을 쌓은 중고교 때 친구라 생각했다. 필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반창회 모임을 하고 있다. 중3과 고3 때 같은 반 친구들 모임이다. 지금은 주로 온라인에서 안부를 확인하는 인창중학교 3학년 6반 벗들과의 40년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1976년에 졸업한 중동고등학교 69회 3학년 5반 20여 명의 우정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어찌 소중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Out of sight, Out of mind'라 하지 않던가. 서울에서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는, 대전과 울산 등 지방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 등 요즘 같은 시기에 반창회를 열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지금은 곁에서 자주 보면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벗이다. 진심이 통한다면, 나이도 성별도 문제가 안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젊은 벗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다. 최근 5년간 1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공부하고 교류하는 울산대 산업대학원 테크노CEO 과정이 내 마음을 순화시켜 줘 감사할 따름이다.
모임에 가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이 친구 많이 늙었네." 속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상대방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기야 세월이 흘렀으니 늙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늙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젊게 지내고 밝게 보이며 활기차게 사는 게 좋다. 오죽했으면 "오늘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나이가 들어가는 신호 같아서 헛웃음이 나온다.
어찌 됐건 오랜만에 본 사람이 늙어 보이는 거로 봐서는, '자주 보면 안 늙는다.'라는 명제가 성립될 수도 있겠다. 일본 도쿄대 노화연구소가 도쿄 주변에 사는 65세 이상 인구 5만 명을 대상으로 혼자 운동한 그룹과 운동은 안 해도 남과 어울린 그룹 중 나중에 누가 덜 늙었는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나 홀로 운동파의 노쇠 위험이 3배 더 컸다. 물론 운동하면 좋지만, 안 해도 남과 어울려 다닌 사람이 더 튼튼했다는 얘기다. 어울리면 돌아다니게 되고, 우울증도 없어지고 활기차게 보이기 마련이다.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는 도시에 사는 고령자 2427명을 대상으로 외출 건수와 사회적 교류 정도를 조사했다. 매일 한 번 이상 집 밖을 나서면 외출족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친구나 지인과 만나거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면 교류족으로 분류했다. 그러고는 4년 후 이들의 신체 활력과 자립도를 비교했다. 당연히 외출과 교류, 두 가지 다 실행한 사람의 점수가 가장 좋았다. 외출과 교류만 비교했을 때는 교류족이 외출족보다 신체 활력이 좋았다. 결국, 외로이 홀로 외출하거나 등산을 다닌 것보다는 사람을 만나 수다 떠는 게 나았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일본에서는 노쇠를 측정하는 지표에 "일주일에 몇 번 남과 어울립니까?"라는 질문이 꼭 들어있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집에 혼자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면 빨리 늙는다. 코로나 방역지침은 잘 지키면서, 어떻게든 친구나 지인들과 자주 만나 어울리며 떠들어야 한다. 그래야 안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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