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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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코스모스

  • 승인 2022-08-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근 중학생들이 동구문화원에 와 연주회를 하였다. 현수막엔 <여름을 부탁해~>로 되어있다. 산내종합사회복지관(관장 이성조)이 육성하는 3기 청소년 문화기획단이 주관한 모양이다.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하였음을 강조하고 자랑한다. 상큼한 냄새가 가득한 햇과일처럼 신선하다. 진행이 매끄럽진 못했지만, 기획은 참 좋았다. 그들 말대로, 끼를 마음껏 발산한 것도 멋지다. 여러 문예동아리를 파악하고 섭외한 것도 장하다. 얼떨결에 축하의 말도 전했다. 활동모습을 SNS에 올릴까? 몹시 망설이다 그만 두었다. 학생들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학생들이 작성한 쪽지 편지를 붙인 화판과 신문기사(본보 8월 9일자 8면 게재) 복사본을 들고 지도 교사 몇 명이 찾아왔다.

옛 생각이 난다. 책장 맨 위 우측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든다. 수천 권의 도서 중 첫 번째인 것이다. 필자의 글이 실린 첫 번째 책은 <봉운>이었다. 강경상업고등학교 2학년 때 문예부 학생들이 만든 책이다. 꼽사리로 시 몇 편 싣고 표지화를 그렸다. 동인지 연구하는 친구가 가져가 지금 필자에겐 없다. 손에 든 책은 변색도 되고, 책장이 너덜너덜하게 낡아 읽기조차 어렵다. 28명의 시 34편을 비롯하여 산문, 유머, 유익한 글 등 59편의 글이 실려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든 책이다.

인쇄소 가기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것 같다. 등사한 책이다. 철판에 기름종이인 등사원지 올리고 철필로 글씨를 쓴다. 철필 글씨도 쉽지 않아,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쪽마다 삽화도 가미한다. 60여 쪽에 불과하지만, 자투리 시간에 새기다보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던 기억이다. 그런 다음, 원지를 등사기에 끼우고 잉크 묻힌 롤러로 밀어서 등사한다. 한 줄로 말하기엔 벅찬 지난한 작업이다. 그나마 모든 장비는 빌린 것이다. 다루는 것도 서툴 수밖에 없다. 결과물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아련히 작업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표지 디자인을 제외한 대부분 작업을 혼자 했던 것 같다. 마지막 등사와 제본은 함께 하였던 모양이다. 등사한 사람 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등사하여 표지나 속지에 색상을 가미하기도 하고, 호치키스로 제본 하였다. 200여부가 완성되었다.

권두언부터 편집후기까지, 책의 형식은 고루 갖추었다. 편집인은 '코스모스' 이다. 회원 명단도 있는데, 1학년 12명, 2학년 20명, 3학년 21명이다. 신기한 것은 53명 대부분이 문집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문학 모임이 아닌 통학생 모임인데 말이다.



학교 다닐 때, 통학한 들판길은 6km정도 된다. 때로는 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열심히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공부 시간이기도 했다. 여학교와 남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었는데, 같은 길로 오가는 학생이 꽤 많았던 것이다. 어울려 모임도 만들고, 다양한 행사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문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코스모스>는 문집 이름이다.

가냘픈 선형의 잎과 맑은 꽃잎이 청초한 소녀를 닮아서였을까, 봄이면 들판길 양옆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다른 풀보다 늦게 순이 올라와 여름내 자란 코스모스가 가을이면 백색, 연분홍, 빨강 꽃을 피웠다. 수줍어하는 소녀들이 고운 얼굴로 하늘하늘 반겨주는 꽃길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어울려 들길이 더욱 사랑스럽고, 풍요로워졌다.

문화혜택이 많은 도회지에서 자란 청소년들에겐 별다른 일이 아닐지 모른다. 외부사람 누구도 관여한 일이 아니다. 통학생 모임을 만든 것도, 들판길에 매년 코스모스를 심은 것도, 각종 문예활동이나 봉사활동, 행사를 벌인 것도 새롭게 와 닿는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함께 했던 모든 통학생이 모나지 않고 바람직하게 성장하여, 사회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였음을 본다. 적절한 모 집단이 없어 비교 불가능이지만, 어느 집단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게 중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관장, 대기업 중역, 잘나가는 사업가도 많다.

생뚱맞게 철모르고 핀 코스모스가 아니다. 그저 자유롭게 핀 꽃이다. 수만 번 되새겨도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제도에 맞춰져 자라는 청소년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잘못이라고, 큰 목소리만 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관제 교육이 아니면 어떠랴, 누군가 책임져야 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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