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광과 수난을 온몸에 새긴 태극기들. 데니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봉오동전투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 |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나 당시의 형태가 어떠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으로 가던 수신사 박영효가 배 위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4괘를 그려 넣어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창안설이 널리 알려진다. 밝음과 평화,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바탕과 음과 양의 기운이 담긴 파랑과 빨강의 태극 문양 그리고 하늘·땅·물·불을 의미하는 4괘까지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이 담겼다. 1883년 3월 고종의 왕명으로 태극기를 국기로 정해 사용되면서 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상징물이 됐다.
조선 고종이 자신의 정치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가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하사한 태극기는 지금까지 발견된 국기 실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극기 바탕은 광목 두 폭을 이어 만들었으며, 깃대에 묶을 수 있도록 끈이 달렸는데 데니의 후손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1876~1949) 주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 신부에게 준 태극기도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어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이다. 태극기 흰 바탕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는 글귀의 김구 선생의 친필 묵서가 쓰여 있다.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1919년 독립운동 현장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가 2009년 서울 진관사(津寬寺) 칠성각(七星閣) 해체 보수과정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사례도 있다.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 부분과 4괘를 검은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실물이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1920년 봉오동전투 당시 일본군을 총공격해 대승을 거둘 때 사용돼 독립군의 핏자국이 얼룩으로 남은 태극기도 현재까지 남아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이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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