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비열함, 무모함, 시기, 결의, 의지 등이 흐르는 각각의 얼굴.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순신의 표정은 비어 있습니다. 아무런 야심도, 비열함도, 시기나 질투, 무모함, 결연하고 비장한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가오는 적과의 대결을 신중히 기다리고 준비할 뿐입니다. 이순신 역을 맡은 박해일은 '명량'(2014)의 최민식의 비장한 열정과 다릅니다. 텅 빈 그의 얼굴과 마음은 모든 것을 담아내고, 감당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쩌면 가장 강한 자의 얼굴입니다.
오래전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전쟁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합쳐 10년간 지속되었지만 막상 그의 함대가 적과 맞닥뜨려 싸운 날은 다 합쳐 몇 달이 안 됩니다. 전투를 위해 그가 준비한 많은 일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과의 끊임없는 소통이었습니다. 가깝게는 부하 장수들로부터 멀게는 임금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는 원균 같은 까다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가로부터 온 여조카, 신분이 낮은 첩자들, 일반 백성들, 승려도 있습니다. 그가 치른 수많은 전투의 승리는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과 소식을 헤아리며 모든 정황을 종합해 올바른 판단을 내린 데 있음을 알았습니다.
박해일의 차분하고 냉정한 연기로 인해 치열한 전투 장면이 많았던 이 영화 역시 통쾌함뿐 아니라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의 연기는 '난중일기'를 읽으며 만났던 이순신과 많이 닮았습니다. 감정의 동요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 '헤어질 결심'의 형사 역할과 더불어 박해일은 올 한 해 빼어난 연기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습니다. 광복절이 가깝고, 애국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지만, 그의 연기는 이 영화를 이른바 '국뽕'으로만 여기지 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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