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국장 |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이들의 치열하면서도 엄혹한 삶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록들이 많지만, 10개 나라 95명의 독립유공자가 일본 군국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대한제국 국민을 보듬고 함께 싸웠다.
41명의 중국인과 12명의 러시아인은 대부분 무장투쟁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저항했다. 치열한 사상노선 투쟁과 엄혹한 현실 앞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 국적의 독립유공자 대부분은 총·칼과 함께 전장에서 산화했다. 사상 노선과 소속은 달랐지만, 역사는 이들을 항일무장투쟁사(史)에 남겼다.
미국 21명, 영국 6명, 캐나다 6명, 호주 3명, 아일랜드 2명, 프랑스와 멕시코에서도 1명씩의 독립유공자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대부분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전도사로서 한반도에 발을 들였다. 눈앞에서 일제 강점기 참혹한 현실을 본 이들은 전도와 교육은 물론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사로서의 면모도 갖추게 됐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회사의 배(船))로 의열단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무기와 탄약을 만주와 국내(당시 경성 등)로 옮겨준 부유했던 기업인도 있다.
95명 중에는 일본인도 2명이 있다. 영화 '박열'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가네코 후미코’(1903.1.25∼1926.7.23)와 ‘후세 다쓰지’(1879.11.14∼1953.9.13)다.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가인 박열(朴烈)과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온 정치적 동지이자 부인으로 1923년 도쿄 대지진 이후 대역사건 주모자라는 누명을 쓰고 옥중에서 산화했다. 후세 다쓰지는 박열을 비롯해 일본 법정에 섰던 의열단과 유학생,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무죄를 주장했던 변호사다. 때문에 자격정지 3회와 투옥 2회 등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오랜 연구와 추적을 통해 밝혀진 95명 외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기록조차 없고 남기지 못한 채 한 줌의 흙으로 떠난 이름 없는 독립유공자는 아마 헤아릴 수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광복절(Liberation Day)은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에서는 전승(戰勝) 기념일로 기록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대일 전승 기념일로, VJ Day(Victory over Japan Day)이다.
유일하게 일본만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8월 15일을 군국주의 실패나 제국주의 전쟁 패망이 아니라 ‘종전(終戰의 날’로 쓰고 있다. 말 그대로 단순히 ‘전쟁이 끝난 날’로 치부하면서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국민은 물론 한반도와 중국,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고통에 몰아넣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말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리며 전례 없던 친일행위 진상규명을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돼 건국 60년 만에 친일 규명 작업이 시작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숱한 논란에도 일본 총리 담화를 반성과 사죄로 받아들이면서 두루뭉실하게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조건으로 위안부 문제를 내세워 한일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일본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발이 거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개관을 축하하고 2243명의 독립유공자를 찾아 포상했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2022년 8월 15일 일흔일곱 번째 광복절.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궁금하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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